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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건축에서의 융복합
- 고딕건축에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까지

일시: 2013년 11월 16일 오전 10시 | 장소: 갤러리 팔레드서울

사회자 | 노형석(한계레 신문사 기자) 
토론자 | 전은경(디자인하우스 편집장), 하태석(SCALE 대표)

디자인은 대개 작가 아닌 장인의 예술, 실용의 미학이 강조되는 장르로 인식되곤 한다. 그래서 그 전부터 미술 건축 등에 비해 훨씬 열려 있고 다른 장르와의 교배에도 적극적이란 인상으로 다가온다. 최근에는 사회적 디자인, 운동으로서의 디자인, 착한 디자인, 그리고 미디어아트, 앱 등의 디지털 환경과 적극 호응하는 융복합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융복합 흐름의 그 트렌드의 현재 양상과 그 의미, 미래 전망에 대해 디자인 쪽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미디어아트 등 첨단시각예술과 건축디자인을 융합하는 작업으로 반향을 낳은 건축가 하태석씨, 그리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으로 디자인 대중화를 위한 글쓰기와 방송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은경씨를 초대했다. 대담은 지난 11월16일 오전 서울 통의동 갤러리 팔레드서울 전시장 한켠에서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 속에 펼쳐졌다. 건축의 역사와 디자인의 정합성을 시종 일관 강조하며 융복합의 맥락을 훑어간 하태석 건축가와 다양한 차원으로 확산되는 21세기 디자인의 새 흐름들을 풀어나간 전 편집장은 서로 다른 생각의 결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디자인 융복합을 위한 진정한 교감과 협력의 모델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융복합 개념에 대하여
△ 노형석(이하 노) 최근 하 건축가가 설계해 만든 건축물이 문화계 화제가 됐다. 지난 9월 서울 홍대 앞 주차장 골목에 공연정보센터 겸 티켓 라운지로 설계해 만든 쌍방향 미디어아트 건축물 신디다. 이용자들이 자체 스마트폰 앱(Application)으로 홍대에서 활동 중인 인디음악인들의 음악을 듣고 밴드들도 후원하며, 건물의 미디어 조명과 음악을 직접 골라 만들어 볼 수도 있다고 들었다. 재능을 기부한 건축가 입장에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 하태석(이하 하) 아쉬움이 좀 있다. 앱을 출시했는데, 사람들 좀더 개방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업데이트 중인데, 디지털 공간과 연결시키는 고리들이 충분하지 않다. 제대로 홍보가 안 돼 앱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잘 모른다. 앱이 제대로 완성이 되어서 올라가면 좀 나아질 듯하다.  

△ 노 디자인 융복합이라고 하면, 그 양상이 무척 다원적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요즘 보면, 건축 등에서 미디어 아트, 테크놀로지와 더욱 적극 결합하는 흐름이 있고 디자이너들 한쪽으로는 사회참여적인 공동체의 철학과 존속을 우선시하며 착한 디자인을 염두에 드는 갈래도 있는 듯하다. 게임과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등의 융합도 이야기한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 생각하는 융복합의 컨셉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각자가 파악하는 현재 한국에서의 융복합 디자인 트렌드는 어떤 모습인지를 먼저 이야기해보는 것이 좋겠다.

△ 하 우선 여러 분야의 장르들이 정의가 되어야 하고 그리고 나서 만나야 한다. 백과사전식으로 처음에 어떤 관계를 맺어서 나열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들이 다시 새로운 하나로 통합되어서 완성되고 거기서 새로운 무이 나왔을 때 그것이 융합이 아닐까. 트랜스라는 게 원래의 시작점과는 다른 지점이 나오는 것이다. 과학이론에서는 복잡계와 관련이 있는 듯한데, 전체가 부분의 합 이상인 것을 말한다. 예술이나 과학의 여러 분야들도 이렇게 합쳐져서 창발성을 발산하는 것이다. 융합이 될 때는 그 개체들의 성격이 변한다. 새로운 창발적인 속성들이 나오는 거다. 융합의 정도에 따라 상당히 다른 종류의 결과물이 나온다. 개체들이 어떻게 변질되느냐에 따라 창발성이 나오는 정도가 다르다. 그러니까 다양한 종류의 융합들이 나올 수 있는 셈이다. 

△ 전은경(이하 전) 융합이란 말을 들었을 때 어려웠다. 개념을 정의하기 나름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으니까. 취재할 때마다 디자인계 사람들한테 물어보긴 했지만 사실 대답하기 힘들고 어려운 개념이다. 건축가나 디자이너 아닌 입장에서 봤을 때는 디자인 자체가 원래 융합이 아닐까 싶다. 애초 디자인이 탄생한 취지가 서로 다른 이종 분야를 결합해서 단순히 같이 붙어있는 게 아니라 새 영역 새 컨셉을 도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서로 붙여 불협화음을 내는 것 아니라 새로운 창조성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하이브리드 개념도 취지는 비슷하다.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협업하는 콜라보레이션 개념이 몇 년 전부터 크게 유행하고 있다. 아티스트 작품을 상품처럼 포장했을 때 이런 콜라보 작업이라는 식의 보도자료가 나온다. 제가 아는 콜라보 작업들은 대부분 아티스트 디자이너 명성 빌려오는 방식이다. 키스 해링, 앤디 워홀의 에디션 프린팅 하는 게 그런 예들이다. 이런 부분은 논의에서 빼고 싶다. 콜라보 이상의 시너지가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이름을 빌리기 위해 하는 행위 같다. 융합의 본래 취지로 돌아가서, 디자인에 초점을 맞춰 얘기하면 영역 파괴는 요즘 항시 일어나는 듯하다. 가장 흔한 예로는 디자이너를 만났을 때 하 선생 같은 분을 미디어아티스트 건축가로 묘사하지 않느냐. 디자이너들 만났을 때, 뭐라고 해야할까, 그래픽 디자이너? 제품 디자이너? 멀티 디자이너예요? 식으로 뭐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정체성의 의미에서) 누구라고 소개를 해야할지 모르겠다. 제품을 설명하기 위해 그런 단어를 쓰는 건데, 뛰어난 재능을 지닌 디자이너 중에서는 이 사람 뭔지 모를 것 같은 이들이 많다. 실제로 그런 역량 가진 이들은 굉장히 복합적으로 디자인한다. 국문과 나왔다고 다 소설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기술의 발전이 뒷받침해줄 수 있으니까, 컨셉트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젊은 디자이너 사이에 만연해 있다. 복합적으로 제품하고 그래픽하고 뭐하고, 그런 이들이 많아진다. 그러니까 디자인 원래부터 그런 융복합의 경향 강했고, 최근에는 테크놀로지의 발달 덕분에 조금 더 용이하게 접근이 가능해진 셈이다. 물론 누구나 다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기반이 조성되어 있다고 본다.

테크놀로지와 융복합

△ 노 그렇다면, 대중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부합되어 가고 있는 것 아닌가. 전 기자 말처럼 복합적 테크놀로지를 이용해서 융복합 흐름이 더 
빨리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 하 융합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건축에서도 융합이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난 시대는 중세 유럽의 고딕시대다. 고딕 건축을 보면 그 안의 여러 요소들이 어디까지가 건축이고 조각이고 그림인지 구분이 없다. 심지어는 고딕은 악기이기도 하다. 고딕 건물 안의 파이프오르간은 건축의 일부로 공간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건축 자체가 울림통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딕은 자체가 울림통 악기다. 고딕 예술 안에 모든 게 녹아있는 거다. 고딕 이후 그런 시대는 오랫동안 없다가, 20세기 초 바우하우스에 와서 새롭게 선언을 하는데 선언문 표지에 고딕 대성당이 그려진 목판화가 나온다. 바우하우스는 다시 고딕을 표방한 것이다. 바우하우스 자체가 건축학교였는데, 많은 예술가들이 가르치지 않았느냐. 바우하우스의 목표는 다시 고딕의 시대로 돌아가서 건축 안에서 모든 예술을 포함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그 학교가 특별하다. 이십세기 문화예술인들에게 영감을 줬던 게 여러 장르들을 묶고자하는 노력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지난세기는 바우하우스가 원한대로 가지는 않았다. 개별적으로 특화되고 모든 장르들이 분화되고 전문화되는 방향으로 갔다. 사실 건축을 보면, 많은 여러 분야들과 협업을 한다. 건축물 만들려면 구조·디자인·엔지니어링·설비·조경·디자인·인테리어·사인 등 많은 사람들과 콜라보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모든 건축물이 융합적인 결과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콜라보 했다고 다 융합은 아니다. 어떻게 다른 분야와 관계를 맺고 콜라보해서 좋은 결과물 나오느냐가 이슈인 것이다. 

△ 노 건축가의 디자인 측면에서 융합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건가.

△ 하 20세기 초반엔 이런 디자인방법론들을 통해 장르를 엮기는 어려웠던 듯하다. 지금 이런 것들이 이슈가 되고 중요해진 것은 테크놀로지
의 가능성이다. 작가들이 기술적 방법론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저는 음악가와도 작업했는데, 개인적으로 음악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제가 하는 건축을 음악적으로 표출할 수 있었다. 제 작업들에서 하나의 컨셉이 여러 다른 스케일이나 다른 방법으로 표현된다고 본다. 장르가 문제되지 않는 건축을 하는 건데, 건축의 표현방식으로 보면 미디어아트로 보는 것 같다. 사실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다. 제 건축적 아이디어의 표출방식이다. 육칠십 년대 건축가들이 새 아이디어 있었으나 짓지 못했다. 자하 하디드, 다니엘 리베스킨트 등의 해체주의 건축가들은 매일 그림만 그리곤 했다. 페이퍼 아키텍트라고 해서 전시만 하고 짓지는 못했다. 너무 급진적 생각이니까. 그 생각들을 지금 후배들은 받아 실현하고 있다. 앞선 생각을 바로 건축에 발현 못해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저는 이 시대의 아트 방법론으로서 옛적 스케치 콜라주 카툰 장르로 건축을 표현했던 것을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따라 미디어아트로 표현한다. 다른 분야 작가들이 같이 작업하는 환경도 만들어졌다. 

△ 노 테크놀로지가 있어서 미디어아트가 방법론으로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인가. 

△ 하 물론 아무 음악가나 손잡고 작업하는 건 아니다. 저와 방법론이 일치하는 작가들과 한다. 이를테면, 오디오비주얼아트를 선보인 태싯 
그룹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를 한다. 알고리즘 음악을 하는 분들인데, 컴퓨터 코드로 음악을 작곡한다. 지금 전시중인 ‘컬렉팅 뮤지엄’, ‘플라스틱 뮤지엄’ 시리즈로, 떠도는 기하? 컬렉팅 뮤지엄이다. 시민들이 참여해 미술관 같이 만드는 작업인데 참여하는 앱이 설치되어 있다. 미술관 같은 도시의 상징 같은 공공건축물을 한명이 독자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컬렉티브하게 참여하며 미술관을 만드는 작업이다. 가능성 보여주는 작업인데, 이번에 설치 된 것들은 작업에 참여하는 동시에 실시간으로 미술관의 공간을 추상적으로 변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건축물의 공간을 짓기 전에는 추상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데 그걸 더 끌고 가 아주 추상적인 공간적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참여자가 다시점으로 여러 시점, 공간을 보게 하면서 공간도 움직이고 여러 시점을 동시에 보여주는 식으로 말이다. 그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미분적분 도시라는 컨셉트로 최진석씨와 콜라보 작업을 했다. 그분도 기술기반 테크노 기반 음악하시는 분이어서 같이 작업할 수 있었다. 건축적인 컨셉과 작업이 갖고 있는 내부적 논리들을 공유하고 비주얼로 음악으로 표현하도록 한 것이다. 


건축과 디자인의 분리

△ 노 하 선생 작업은 서구 예술사에서 말하는 고딕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이 융합이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그러니까 뿌리는 같다는 것인가.

△ 하 제게는 ‘고딕·바우하우스·가우디’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 노 의문이 생기는데, 왜 바우하우스의 정신은 그 뒤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을까. 건축이 디자인은 물론이고, 조각이나 건축의 원형이라고 
한다. 바우하우스 운동이 통합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그 뒤 모더니즘 미술은 격자의 미학에서 보이듯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지금은 오히려 기능적인 디자인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융합의 정신이 왜 20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제대로 구현될 수 없었는지 궁금해진다.

△ 하 중세 고딕 시대 때는 장르의 구분이 없었다. 15세기 르네상스기에 와서야 미술 ,조각 이런 것들이 건축과 별개로 장르가 구분되기 시작
했다. 공간이 있고, 사람들이 그림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다 벽화였지만, 건축과 분리되어 액자에 들고 다니면서 붙일 수 있는 형태로 된 것이다. 20세기 초 바우하우스 시절에 장르들이 많이 분화됐고 그 분화된 장르들이 조금 더 심도 있게 진행되는 시점이었던 듯하다. 20세기 중반에는 디자인 개념이 제품 개념으로 바뀌었다. 산업혁명 이후 건축가 디자이너가 분리됐다. 디자이너는 건축가가 원형인데, 건축가가 제품 의자를 디자인하다 분화가 된 것이다. 디터 람스같은 제품 가구의 명 디자이너들이 나오고, 디자인 여러 세부 장르들도 생겨났고, 이 분야들이 더 발전하게 됐다. 
건축은 오히려 엔벌로프(envelope 봉투, 껍데기)로서만 작동되어 기능이 축소가 된다. 이 처럼 진화된 많은 것들을 묶어주는 사회도 살펴보면 전문화하고 서로 영역들이 합쳐지는 건 꺼려하는 쪽으로 변화됐다고 생각한다. 대학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대학도 칸막이로 나눠지고 그들 간의 교류도 없어졌다. 모든 게 전문화, 다양화된 것이다. 더 나아가 이제 새로운 가치를 찾아야 되는 사회로 오면서 그것들을 연결시켜 줘야하는데, 윤활제 같은 역할의 테크놀로지가 중심을 잡아주며 연결을 시켜주는 시대가 됐다. 

△ 노 그렇게 본다면, 20세기 초 구현하려 했던, 모더니즘 미술의 본질을 이제야 실현하려는 시점이라는 이야기인가. 

△ 하 그렇다.

△ 전 고대에는 장르 구분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르네상스 미술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거장 몇 사람들이 다한 것처럼 보지만 그 시대에는 그게 너무 당연했던 듯하다. 다빈치만 해도 예술가 과학자 등 다양한 역할 수행했고, 지금의 디자이너 역할도 했다. 다빈치가 교황에게 보냈던 편지를 보면, 자기는 무기를 굉장히 잘 만든다, 그림도 조금 그릴 줄 안다고 자기를 홍보했다고 한다. 후원받아야 하니까 그랬겠지만, 그 말이 너무 재밌었다. 디자인도 생각해보면 개념의 역사가 백년도 안됐다. 본격적인 대량생산의 시대를 열었다는 관점에서 보면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영역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예술가 건축가까지 올라갈 수 있겠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같은 이는 수학자로 알려졌지만 철학자이고 음악이론가였고, 서양 미술이론 첫 장에 나오는 인물이다. 지금 보면 어찌 한 사람이 저걸 다할까 싶다. 그러나 학문 영역 구분하지 않았던 그 시절엔 모든 학문 지식의 융합이 당연하지 않았을까. 스스로 영역을 가두지 않아 사고방식이 인간을 중심이었고,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던 것이 산업화 시대에 들어가면서 전문성 효율성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야 사회적 대접 받을 수 있으니, 오히려 그런 영역을 분화시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지금 이 시대에는 전문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오히려 더 통합적인 사고를 시대가 요구한다. 그래서 지금 융합이니 이런 얘기를 하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게 시대가 원하는 질문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과거엔 건물을 지어달라고 클라이언트의 의뢰가 왔지만 이제는 복합적 의뢰가 온다. 그런 요구들은 원하는 것과 질문이 바뀌었기 때문일텐데, 디자이너 얘기들 들어보면 예전에는 기업에서 휴대폰 디자인 하나 해달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질문하지 않고 미래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컨셉트를 잡아달라는 식의 질문이 나온다고 한다. 일반화된 것은 아니지만, 미래 컨셉트 중요하니 선점하려면 미래 시장을 연구해야한다는 거다. 반드시 어떤 제품을 디자인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렇게 요구가 달라졌다. 그렇다면 제품 잘하는 디자이너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컨셉트 있다면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 구현 기술은 조력자들이 협업 통해 도와줄 수 있다. 그런 환경 마련된 만큼 요구가 바뀌고 질문도 바뀔 수 있다. 


건축-디자인 개념의 확장과 재융합
△ 노 디자이너 하는 일들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통념을 벗어난 영역까지 갈수록 매우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말이겠다.

△ 전 요즘은 디자인 프로젝트는 물론 굉장히 가변적인 가구를 비롯하여 조직 컨설팅, 인사까지 하고 있다. 그런 것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영역 가운데 하나가 서비스 디자인이다. 아직 개념이 모호하고 정의가 좀 더 필요한 분야이긴 한데, 이를 지향하는 회사들 많다. 디자인은 문제해결이란 인식이 강하다. 제품 디자인 회사는 병원 프로젝트 개선 등의 컨설팅도 한다. 이를테면, 베스트케이스로 아이디요란 디자인 회사 컨설팅펌이 있다. 
이 회사는 제품 만드는 게 아니라 서비스를 디자인한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잔돈 저금 서비스 등은 디자이너가 설계한 거다. 의료 서비스 개선의 경우도 결과물이 의료기기로 나오진 않지만 의사들 관찰해 환자와의 소통을 통해 어떤 게 불편해 바꾼다든가, 동선을 개선한다든가, 환자가 위압감을 느끼지 않는 편안한 가구들로 분위기를 개선한다든가, 진찰 프로세스 개선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디자이너가 한다고 생각하지 않던 영역들을 그런 컨설팅 과정 거쳐서 시스템을 개선하는 정도까지 디자인의 영역이 넓어졌다. 충분히 협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디자이너만 활동하는 곳도 있지만, 공대 출신 기술자와 사회학자, 경영학 전공자 등 매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 와서 같은 공간 내에서 협력하며 일한다. 예를 들어 현대카드의 경우 디자인 부서 안에 디자인 전공자만 뽑지 않는다. 경영학, 심리학 등의 타 전공 구성원들을 다양하게 뽑는다. 협업의 여지를 크게 열어놓는 것인데, 내가 못하면 밖에서 외주를 주거나 하는 시스템이 많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 노 디자이너의 정체성이 새로워지고 있고, 실제로 하고 있는 일들이 바뀌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흐름이다. 그것은 디자이너의 상상력이 투영되고 도출되는 방식이 정체성의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하 선생은 종종 미디어아티스트로도 불린다. 이런 호칭을 들으면 거부감이없나. 자기 스스로 건축가로서의 정체성이 바뀌었다고 보는 건가.

△하/아까 한 바우하우스 고딕 얘기도 정체성 얘기다. 건축가 영역이 그동안 축소됐는데, 이게 건축의 본질일까. 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다. 건축이 여러 영역들을 포괄하고, 공간적인 융합의 중심에 있어야 될 것이라고 본다. 건축은 본질적으로 지어져야 경험할 수 있다. 제가 하는 미디어아트 작업은 지어지기 전 건축 아이디어 컨셉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택한 것이다. 보통 디자이너들은 클라이언트가 있어서 의뢰를 해야 작업을 시작하는 데 많은 제 작업들은 제가 주도권을 갖는다. 의뢰인이 없다. 작가주의로 오해될 수 있는데 그보다는 작가가 주도권을 갖는 것을 말한다. 저는 스스로를 인디 건축가, 벤처라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는 테크 스타트 컴퍼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이니셔티브를 갖고 클라이언트가 말하기 전에 이 사회의 건축적 도시적 비전을 제시한다. 그게 20세기 초반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등 건축가들이 했던 역할이었다. 그들이 그런 비전 제시했기 때문에 사회와의 관계, 사회에서의 역할이 있었다. 지금은 건축이 축소되고 누가 문제를 던져줘야 풀고, 내는 사람 푸는 사람 위상이 다르다. 지금 이 시대 어떤 문제가 있는지 개념짓고 정의하고 시대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건축가가 해줘야 하는데, 그런 역할이 줄어든 거다. 저는 건축가로서 이 시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니셔티브 맥락에서 작업하다보니 작가주의로 비춰지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 전 그렇다면 앞으로 건축하지 않는 건축가들도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보는 건가. 건축의 본질적인 역할을 생각하면.

△ 하 그런 이들 많이 나올 것이다. 이탈리아 건축학교 출신 건축가들이 많이 활동한다. 그 나라는 역사적 유물 때문에 새로운 건축을 지을 수 있는 경험을 찾기 어려워 건축과를 나와서 제품, 가구 등 다른 걸 디자인한다. 형태를 만들고 관계를 공부하는 게 건축교육의 형식이므로 다른 스케일로 구현된다. 영화 디자이너로 가는 등 다른 길로 가는 케이스들이 많다. 그러니까 다른 방식으로 불리는 것이다. 건축가는 건축물을 만드는 사람일 뿐 아니라, 공간환경을 만드는 사람이다. 스케일이 여러 범위에 걸쳐 달라진다. 도시적 스케일, 건축적 스케일, 공간적 스케일, 작게는 가구적 스케일까지. 저는 스케일 없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이를테면 크기 구애 안 받는 논스케일(Non-Scale)건축이다. 앱(App)처럼 덩어리가 없는 미디어 작업 또한 그런 맥락이다. 

△ 노 융복합이 이종의 결합으로 새로운 창발성이 생기는 것이라면, 하나의 이상화된 규범이 있었던 시대, 그 시대로 가자는 요구들도 나올 수 있다. 융복합 방법론을 쓰되, 이상적인 본질로 돌아가자. 그렇게 읽히는 측면도 있다. 하 선생의 디자인 융합론은 이상적 본질에 대한 회귀성 강조하는 것은 아닌지.

△ 하 제 작업이 융합적이긴 하다. 최근 저를 포함한 여러 건축가, 과학자, 예술가들이 손잡고 자연과 미디어 주제의 공공예술작품을 제주에 설치해 공개한 자연과 미디어 에뉴알레(Media Annuale)도 그렇다. 콜라보를 통해 새로운 융합 결과물 만드는 게 목표다. 참여하는 이들의 정체성은 중요하다. 그게 있어야만 콜라보가 가능하니까. 내가 음악가인지, 건축가인지 모르면 안 된다. 정체성 분명한 사람들끼리 만나 자기 하는 방법과 성격을 분명히 보여주고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 나오는 결과물이 융합적인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창조자들 스스로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유연한 부분이 있는 거다. 자기 영역과 다른 영역이 겹치는 것을 혼쾌히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분들이 에뉴알레에 많이 참여했다. 기술 기반, 테크 기반 작가들, 예컨대 음악가 권병준씨 같은 분들은 새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갖고 악기 음악을 한다. 미디어아티스트 그룹 에브리웨어의 경우 디자이너랑, 기계과 교수들이 같이 이룬 팀이다. 겹치는 것이 두렵지 않고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분들 정체성이 분명하다. 단지 자기 영역에 선을 긋고 딱 안하는 게 아니라, 미디어 아트를 통해 보여주는 비주얼 악기도 음악이다. 타싯 그룹의 경우도 프로그램까지 음악이라고 보지만, 그분들 정체성 흔들리는 게 아니다.

△ 전 하 선생 견해와 비슷한데 정체성 버리는 게 아니라 역할 정의를 새롭게 하고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가는 차원이라고 본다. 제품 디자인만 하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정체성 갖고 영역을 확장하는 차원으로 이해하는 게 맞을 듯하다. 예전엔 내 범주 스스로 옭아맸다면 이젠 일종의 서비스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 디자인을 선 기반으로 다른 일을 하는 셈인데, 요즘 범죄 예방을 위한 디자인에서 보이듯 사회문제도 디자인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런 범주가 나오는 건 디자인이 필요한 영역 넓어졌다는 측면에서 볼 수 있겠다. 과거엔 디자인하면 멋진 인테리어 정도로, 사치품으로 바라봤지만, 지금은 단지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오브제 뽑는 일 외에도 농사 같이 전혀 무관할 듯한 분야에도 디자인이 필요해진다. 예컨대 농산물에는 브랜드 개념이 없었다. 이젠 상추도 특별하게 브랜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도화한 자본주의 마케팅 차원뿐만 아니라 생산물에 대한 부가가치를 올려주는 것이니까. 그냥 사과가 아니라 아버지가 애써 키웠다는 스토리텔링, 누가 만든 특별함 같은 것들이 반영된다. 농림수산업에도 그런 개념이 필요해지기 시작했다는 것, 그분들에게 생계를 위해 필요한 것, 포장 멋있게 하는 게 아니라, 사과에 이런 이야기로 브랜드성을 부여해주고, 유통 부분까지도 관여하는 경우가 있다. 프로모션도 돕고. 과거엔 도매에 넘겨 도매상에 넘기는 것이 다였는데, 이젠 디자인이 유통구조도 바꾸고 있다. 이장섭씨의 액션서울이 내놓은 브랜드 ‘파파사과’가 성공적인 사례다. 상주 봉화에서 사과를 만드는 과수원 주인이 디자이너를 찾아와 이러이러한 것을 하고 싶은데 한번 같이 해보자고 해서 패키지도 새로 했고, 파파사과 브랜드를 만들었다. ‘슬로워크(slowalk)’ 같은 팀들도 사회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려는 디자이너들이다. 디자인에 관한 필요 영역 넓어지니 당연히 관여하고 생각할 일이 늘어난 셈이다. 소셜펀딩 등으로 사회문제 개선에 기여하는 사례는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달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회 참여적 사안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공유하고 싶어 달력 만들고 수익은 기부하고, 사람들 관심 모으고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일인시위하거나 드러눕거나 하는 등의 방법으로 디자인은 사회적 현안에 사람들 관심 갖게 모아주고 참여를 한다. 
디자이너 찰스임즈 부부(Charles Eames, Charles Ormond Eames)는 의자로 유명한데 원래는 건축을 전공했던 이들이다. 많은 산업 디자이너들이 건축을 전공했다. 건축에서 다루는 범주가 넓다보니 역할도 그 안에서 다양하다. 건축은 공간감, 인테리어 제품 배치 등 고려해야할 부분이 많다. 임즈는 1900년대 초반 미국이 낳은 인물이지만, 건축도 했고 의자도 했고 <파워 오브 텐(Power of ten)>이란 영화도 찍었다. 그 영화에서 선보인 줌인 기술은 영화감독이 아직도 많이 응용하는 기술이다. 전시 디자인도 했고 디자인 컨설팅까지 했다. 얼마 전에 건축영화제에서 임즈 영화를 봤는데, 일종의 커뮤니케이터 역할까지 한 셈이다. 냉전시대 때 미국 정부가 러시아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홍보 영상까지 임즈에게 의뢰했다. 그를 건축가, 가구 디자이너로만 봤으면 그런 부탁을 안했을 거다. 러시아 대통령이 보고 감동받았다고 한다. 임즈의 역할은 선구적이다. 융복합 개념이 없을 때 스스로 모든 곳에서 활동했다. 융복합적 성향과 재능을 많이 지닌 인물이 아닌가 싶다. 임즈는 아마도 내가 원래 디자이너인데 이런 분야는 못하겠다고 하지 않았을 거다. 그는 창작하는 분야에서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활동한 것이다.


융복합적 흐름
△ 노 하 선생은 홍대 인디페스티벌에서 활동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하 선생 요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몇 개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융복합 담론을 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홍대앞 공연정보센터인 신디 프로젝트, 제주도 에뉴알레 프로젝트 등이 알려져 있는데, 자기 구상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궁금하다.△하/제가 설계한 신디에서는 건축이 사용자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 사용자가 건축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제 건축 작업들은 대개 애플리케이션이 있다. 2010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 출품작인 ‘미분도시 적분생활’의 경우 건축 과정에 사람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스마트폰 앱을 만들었다. 스마트폰은 컴퓨터를 들고 다니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기기다. 우리가 어떻게 원하는 도시를 만들 것이냐에 대한 관객들의 생각이 작업에 반영되고 그걸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도시가 탑다운식으로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시민들 참여해서 자기네 원하는 도시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컨셉트를 다이어그램이나 도면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사실 앱으로 작업한 최초의 건축가가 나다. 애플리케이션 통해 시민 참여시키고, 바로 전시공간 작업에 반영이 되어 도시가 바뀌는 작품이었다. 그때 이후로 그 작업이 예술계에서 반향이 있었다. 건축계에서는 하태석이 특이한 것 한다며, 조금 관심이 일어난 정도였다. 그때는 미디어아트계에서 그런 기술을 테스트하는 정도였다. 기술적으로 어려웠지만, 많은 것들을 거기서 녹여내 아이티와 건축 문학을 담았다. 인터액티브로 표현 방식을 시도했다는 게 주목을 받았던 듯하다. 그때 이후로 제 작업에 앱이 많이 등장했다. 서울 이태원의 제 사무실(헥사곤)에도 일반인이 참여할 수 있는 앱이 있다. 

△ 노 이를테면 간판 색도 바꾸고, 문을 만들고 하는 것인가? 

△ 하 그건 작은 부분이다. 참여하는 사람이 공간환경 구축하는 여러 요소들을 컨트롤하고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 작업을 실제 건축에 적용한 첫 사례가 신디였다. 신디는 프로젝트 작업의 전체 컨셉과 네이밍 브랜드, 로고 디자인, 건축 인터랙티브 시스템 어플리케이션 등 모든 디자인을 저희가 다했다. 거기서 핵심은 건축이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실제 그 건축물이 사회 안에서 작동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었다. 신디에 붙인 컨셉은 인디 음악을 위해 태어난 도시 생명체였다. 신디는 홍대에 거주하는 가상의 생명체-애완동물의 이름이다. 신디라고 불러주고 예뻐해 줄수록 우리 인디음악이 발전한다는 컨셉이다. 그걸 작동시키려면 건축물로는 한계가 있다. 건축공간을 보고 멋있다는 식의 공간 경험은 되지만, 그것으로는 인디음악이 발전하지 않을 것 아닌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시민을 참여시켜 앱을 실행하면, 인디밴드들도 자기 음악을 올리고 시민들이 들을 수 있다. 국내 음악시장 자체가 음원을 사지 않는 구조다. 오천 원 내면 무제한 듣는 그런 상황에서 인디음악 발전은 불가능하다. 인디 음악가들이 매일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일하고 정작 음악 할 시간이 없다. 밤에 일하고 두 세 시간 연습한다고 실력 늘지 않는다. 
성공하려면 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 자신의 일에서 무엇인가 이루려 할 때 절대적으로 만 시간은 채워야 한다는 거다. 전설적인 팝그룹 비틀즈는 죽어라고 노래하며 만 시간을 채웠다. 그 사람들 음악하려는 환경하려면 공공적 지원을 해줘야 한다. 시민들은 밴드들을 후원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앱을 꺼내 볼 수 있는 가상의 신디를 다 마고치(가상의 애완물)처럼 갖고 노는 것이다. 자기가 직접 패턴들을 만들어보고 놀 수 있다. 이를테면 건물 외부 표면의 패턴을 점박이, 줄무늬 등으로 바꿀 수 있다.△전/앱에서 다운받아서 하는 건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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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다운받아서, 음악을 고르면 실제 건축물과 동기화가 된다. 내가 만든 신디의 조명 패턴이랑 고른 음악이 실제 건축물에서 나온다. 그 공간에서 실제와 허상이 막 서로 경계가 없어진다.

△ 노 이용자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 해볼 수 있나. 실제 건축물에 즉각적으로 반영이 되나.

△ 하 조명을 통해 가능하다. 

△ 노 반응은 어떤가? 신디를 소개하는 기사를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일반인들의 참여도는?

△ 하 앱이 아직 다 완성은 안됐다. 이 앱을 만들면서 음악 비지니스를 하는 건지, 앱 개발사가 된건지 스스로도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어쨌든 저희 팀 안에서 다 한다.

△ 전 구성원이 어떻게 되나? △ 하 프로그래머, 건축디자이너, 큐레이터, 앱 개발자 등 각 구성원들이 모여 있다. 갑자기 레이블 음반사를 차린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다. 건축이 실제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영역과 결합되면서 작동하는 것을 만드는 게 제가 하고자하는 것이다. 단순한 앱이 아니라, 건축과 앱이 상호 보완적하며 하나로 움직이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인디음악을 관객들에게 알리고 음악 시장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그것이 건축-앱-관객참여-인디음악까지 상호보완적 혹은 융합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인디음악 프로모션을 위한 건데, 안드로이드는 베타버전이 나왔고, 아이폰 버전은 곧 올라갈 거다. 2주 정도 걸릴 거다.

△ 노 반응은 감지가 되나?

△ 하 작업이 소비자 마켓 들어가면 다른 영역이다. 조금만 앱을 쓰기 불편하면 안 쓴다. 냉혹하다. 건축에서 앱을 만드는 것은 대단한 건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 앱이랑 다른 앱이랑 같이 경쟁하는 것에 불과하다. 음악을 들려주는 앱들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는 ‘쏭자’라는 앱이 있는데, 이런 다른 음악앱과의 경쟁에서 선택받아야 한다. 앱들 가운데 선택 받으려면 장점이 있어야 한다. 신디라는 실제 건축물이 만들어지고, 우리 인디음악이 흐르고 인디문화를 보여주고 그게 아이콘 되고 관광상품이 되고 시너지를 발생할 거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두 분야 모두 높은 완성도를 가져야할 것이다.

△ 노 이야기를 되짚어보니 또 다른 화두가 생긴다. 이런 지속적인 흐름으로 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성으로 가는 그 자체가 벽이자 과제로 다가오지 않을까.

△ 하 제 작업은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완성된다. 이를 위해 대중과 만나는 접점을 항상 고민한다. 인터페이스가 생기는 거다.

△ 전 주로 작업한 것 보면, 사람들 참여시키는 작업을 많이 했다. 예전에는 건축물을 지으면 사람들이 들어와 경험하게 하는 형태였다. 앱을 공간 개념으로 본다면 참여시키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도구가 미디어아트 아닌가. 좋은 방식이 될 수 있어 선호하는 건가?

△ 하 원래 미디어아트 하려했던 것 아니고, 베니스비엔날레 작업을 하면서 직관적으로 그 표현 방식을 찾은 거다. 그 결과물을 미디어아트로 부른 것이고.

△ 전 인터넷 검색해보면 하 선생은 미디어아티스트 다음으로 건축가 하태석으로 나온다. 거기 대해 별로 거리낌은 없나. 슬기와 민 등 아티스트냐 디자이너냐 따지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은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디자인이 아니라, <아트인컬처> <월간미술> 등 미술계 잡지들에 훨씬 더 많이 나오는 디자이너들이 생겨났다. 디자이너이면서 아티스트적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다. 미술계에서는 그걸 아티스트적 행위로 보는 거고 그들 스스로도 자신의 호칭이나 역할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우리가 하는 역할을 규정짓고 그렇게 영역화해서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잭슨 홍도 제가 일하는 월간 <디자인>에서 의뢰하여 취재하러 갔더니, 디자인 잡지에서 처음 왔다고 반가워했다. 융합 측면에서 보기보다는 그분 자체가 마치 암수한몸으로 이뤄져 있는 것 같다. 디자이너로서는 필명 홍승표란 이름을 쓰고 아티스트로서는 잭슨 홍이란 이름을 쓰며 활동한다. 전시 활동하지만, 디자인 일도 꾸준히 하더라. 그 분 의도를 몰라 조심스럽지만,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로 디자인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디자이너로서는 작가적 행위와 노동을 하는 예술가 마인드에 비즈니스 마인드까지 함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취재하면서 느낀건데 요즘 디자이너들도 그런 생각 많이 하는 듯하다.


건축과 디자인의 새로운 정체성

△ 노 우리의 처음 화두가 융복합에서의 미세한 결들을 보는 것이었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예술가적 마인드에 비즈니스를 적절하게 하면서 포장하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겠다. 거기다 하 선생은 건축과 디자인을 퍼블릭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건축가의 볼륨을 생각하면 건축가의 정체성을 더욱더 분명하게 인식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건축과 디자인이 자리매김하는데 있어 그 둘의 정체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 전 거대 건축은 안에서 모든 사람을 만나게 한다. 앱이나 공공프로젝트를 통해 건축에 더 많은 사람 모이게 해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게 하는 역할을 하 선생이 더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디자인은 상업적이고 예술은 순수하다고 분류하는데 반감이 있다. 아티스트적인 것과 쓰임을 생각하고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디자인을 두고 쓸모 있는 예술이라고도 한다. 그렇게 가기시작하면 융합의 개념이 너무 멀리 가는 것이고 복잡해질 수 있다. 다시 돌아가 융합이 처음에 이종산업 분야와의 연합이고, 그 이종 분야가 만나 새로운 영역을 창출하는 것을 결합이라고 본다면, 저는 이런 융합을 단순한 결과물보다는 전략의 개념으로 이해해야겠는 생각이 든다. 칸 국제광고제는 몇 년 전에 칸 국제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로 이름 바꿨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출품작들 때문이다. 예전의 광고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는 것들이 생긴 거다. 불과 5~6년 사이 이런 변화 일어났다. 칸이 전통적인 필름 옥외광고 이런 부분만 다루다가 디자인 부분이 갑자기 추가됐다. 그러다 모든 부분 통합경쟁하는 티타늄 부문이 신설됐다. 그리고 드디어 광고제 이름까지 바뀌었다.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일어나는 중요한 지점이다. 예전 티브이 영상으로는 광고라는 말을 더 이상 담을 수 없게 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 어떤 프로젝트의 개념으로 이해를 해야 하는지, 특정 분야로 가둘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너무 다변적인 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경쟁 상대가 달라진다. 건축가가 경쟁자가 될 수도 있고, 연쇄 작용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난다. 온라인 오프라인 결합은 당연한 것으로, 미디어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티브이 광고 때리면 게임 끝이 아닌 시대다. 저희도 통칭하여 디자이너란 말보다 크리에이터란 용어를 더 많이 쓴다. 모든 사람들의 범주를 담을 수 있는 적절한 용어가 바로 크리에이터다. 

△ 하 저 혼자 이걸 하기보다는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제주 에뉴알레를 하게 된 거다. 같이 하면 무브먼트가 되고 사회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에뉴알레를 하기 전에 종합적인(multidisciplinary) 이벤트들을 조직했었다. 제 관심사는 많은 영역들 참여시켜 자기 얘기를 하게 하는 행사다. 참여를 하면 사람들이 흥미롭게 느끼게 되는데, 여러 영역 같이 혼재되니 영감도 자극도 많이 받는다. 새로운 것들이 그들 네트워크로 콜라보도 되고, 다른 게 나올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거였는데, 거기서 더 나가서 에뉴알레는 실제로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콜라보를 해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드는 게 목적이다. 자연 안에서 자연이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에 반응하는 예술건축 디자인의 결과물을 만드는 거였다. 첫해인 올해에는 건축·과학·예술 한팀이 되어 한 작품을 했다. 저희 팀의 경우는 저와 권경준, 김대희 박사(미세조류 연구자)가 작업했는데, 바다의 발광 생물체인 미세조류를 소재로 했다. 밤에 흔들면 파란빛 나는 생물을 실제 제주도 있는 민속신앙과 결합을 시켜 당(堂)에서 소원을 비는 것이었다. 우리 파빌리온은 사랑당이었는데, 사람들이 방문해 사랑당의 캡슐에 담긴 파란색 용액을 뿌리면서 의식에 참여했다. 다른 작가는 바람을 이용해 반응하는 구조물이었다. 과학적인 원리를 이용해 건축과 예술 과학의 융합의 도량으로 만들어냈다. 전시를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마을에 설치해 그 마을이 새로운 아이디어 인풋을 받아들여, 많이 재생이 되고 새 마을로 바뀌는 컨셉트다. 융합적인 결과물들이 실제 사용되고 축적이 되고 마을 주민들이 참여를 해서 주민과 작업들이 같이 관계를 맺고 좋은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이다. 융합에서 시작했지만 실제 우리의 삶을 바꾸는 동네를 바꾸는 사업과 연결되는 것이 핵심이다.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한 미적분도시는 아트 영역이라 쉬운데, 대중과 만나는 신디 같은 앱의 경우 대중에게 이해를 시켜야 한다. 

△ 전 대중은 불편함을 못 참고, 관용심이 별로 없다. 그게 쉽지 않다.

△ 하 미적분도시의 경우 몇 만 명이 참여하는 등 호응 좋았다. 새로운 방식의 경험이기도 하고 지금도 보여주면 신기해한다.

△ 전 예술의 범주로 묶는다기보다 작품으로 보여줄 때는 경험할 수 있는 이는 소수다. 관람객이 와야 감상하고 평을 할 수 있는데 앱으로 넘어가면 많은 이들이 접할 때 반응이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 조금만 어려우면 안한다. 관객·대중과의 만남의 경우 각각 느끼는 감정 다를텐데.

△ 하 예술적 작업 상업적 작업의 완성도 차이가 있는 듯하다.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다하면 예술적 완성도가 높아지긴 하는데, 대중 위
한 인터페이스 작업은 그 위에 다른 것 갖춰야 한다.

△ 전 예전에는 아트라면 자기 손으로 끝까지 하는 것을 쳐줬다. 디자인에 비유하면 약간의 장인적인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영국의 인기작가 데미언 허스트와 일본의 제이팝을 대표하는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는 다 팩토리(공장) 개념으로 작품을 만들지 않느냐. 허스트의 대표작 땡땡이는 자기가 안 그린다. 그런데도 그걸 갖고 뭐라 안한다. 이처럼 어시스트 개념이 만연되면서, 이미 예술 보는 관점도 바뀌었다. 내가 내 손으로 하는 것들만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따지고 보면 그렇다는 생각도 든다.


융복합의 방법론
△ 노 몇 가지 흥미로운 생각이 든다. 작가의 정체성에서 시작해서 대중과의 접점을 강조한다. 이제 개념적 컨셉트가 더욱 주된 흐름이 되는 듯하다. 융복합의 방법론에 대해 두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 전 사람들이 ‘크리에이티브’라고 하지만 너무 새로운 것만 요구한다. 무조건 새로워야한다는 것, 무엇이 도대체 크리에이티브인가? 이제는 새로워야만 한다고 명령한다.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새로움을,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강박을 강요하는 시대다. 마치 새롭지 않으면 죽으라는 듯이. 어떨 때는 무섭다.

△ 하 전 그 반대다. 건축가로 일하며 느낀 게 정말 크리에이티브한 게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건축주에게 크리에이티브한 새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대개 거부당한다. 오히려 새로운 건 무서워한다. 건축은 워낙 잘못되면 피해가 크기 때문에 더 보수적이고 안전한 방향을 좇는다. 물론 작업할 때는 조금 더 자유롭긴 하다. 우리 사회가 가진 특징이 테크놀로지에는 관대한 게 있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대함과 더불어 이를 통해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은 있다. 신디 같은 것을 선진국에서 하려해도 엄청난 자본이 들어가 힘들었을 거다. 다행히 건축가에 대한 신뢰 같은 게 있었고, 한번도 실행 안한 기술을 이야기하는데도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게 만들어지는 풍토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 기뻤다. 당대의 한국이 지닌 힘인 듯하다.

△ 노 드라마나 대중음악은 상당히 파격적으로 트렌드가 바뀌기도 한다. 미술영역에서는 디자인이나 조각, 회화 등의 편차가 커 보인다. 건축의 경우 많은 이들이 아직도 보수적이다. 그동안 고수했던 방법론들이 쉽게 깨어지기는 어렵다. 30~40년 정도는 흘러야 분위기가 좀더 바뀔 수 있지 않나. 

△ 하 분위기는 현재 바뀌고 있다. 새로운 건축에 대한 가능성을 일부 건축주들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이디어와 결합한 공간적 가능성에 대해 반응하는 이들이 있다.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므로 어느 순간 다른 국면으로 가버린다. 선형적 발전이 아니라 비선형적으로 다음 단계로 곧장 넘어가버린다. 바로 그런 기점에 우리 사회가 놓여있다. 어느 순간 이런 융복합 디자인의 흐름이, 특히 건축 분야에서 확 다가올 수 있다.

△ 노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융복합 디자인도 어느 순간 돌연 하나의 트렌드로 도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 하 1960~70년대 이후 건축 뿐 아니라 다른 장르 부분에서도 트렌드를 보면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더 개인화하고 자기가 하고자하는 것에 충실한 엑스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70년대생 이후 세대는 국제화되어 있고 테크놀로지에 친숙하다.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60년대 세대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70년대 이후는 기술이 더 국제적이며, 교육이 바뀌면서 많은 것들이 사회적으로 연결되었다. 후배들 보면 확실히 기술기반으로 작업하는 이들이 많다. 단지 아직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젊은 건축가 포럼을 운영하고 있는데, 모임에 나오는 건축가 친구들은 시대의 고민을 가지고 기념비적인 건축을 하고자 한다. 이들은 현실과 일상에 더 밀접하고, 가볍지만 사람이 더 중심이 되는 건축을 추구하려 한다. 
문훈, 김찬중 같은 이런 건축가들은 대중적으로도 소통이 되는 방식으로 작업하려 한다. 건축계도 확실히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70년대 초 변화의 흐름들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 아무래도 건축이 지어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변화가 가시화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

△ 노 앞으로 융복합 디자인은 어느 쪽으로 트렌드가 흘러갈까? 특히 한국에서 이 융복합 디자인의 등장과 전개가 지닌 함의, 전망과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 하 ‘뭘 하자’ 이런 식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시대적 흐름 키워드는 융합인데, 실제로 그걸 하는 방법은 모른다. 정리가 안 되어 있다. 그 목표로 가기 위한 길이 하나가 아니고 많다. 크리에이터스 커뮤니티가 경험하고 실제로 해봐야하는 테스트 기간은 오래 걸린다. 실패 성공을 막론하고 많은 융합적 작업들이 다방면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 중에 성공한 사례를 후배들이 배우고. 그 방법들을 익혀나가야 한다. 융합이 사회 패션 트렌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백 년 동안 가야할 가치인 듯하다. 그걸 통해 이 사회와 모든 기술, 지식과 결합되어 더 나은 전체를 만들 수 있는 시너지가 나온다. 제가 참여한 제주 에뉴알레가 그런 질문 아래 그걸 실행하기 위해 만든 행사다. 그 과정이 너무 중요하다. 거기서 어떤 게 나오는지 도큐멘테이
션하고 공론화하고, 그런 것들이 좀더 많이 나오도록 결집하고 담론 내고 갈래를 계속 만들 필요가 있다. 

△ 전 아직 크리에이티브란 개념은 과도기적인 것 같다. 크리에이티브를 누구나 외치며, 차별성을 강조하지만, 수용해서 현실화하기까지는 아직 문이 안 열린 듯하다. 막상 색다르면 차별을 받는다. 크리에이티브 자체에 대해서 맹종하는 사회적 흐름도 있고. 조금 중의적인 의미인데, 원칙의 수호자도 있어야 균형이 맞다. 방법적 개선은 필요하나, 원칙을 지켜야하는 쪽에 무작정 크리에이티브를 강요해서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든다거나, 크리에이티브를 현실화할 만큼 관용적인 세상은 아닌 듯하다. 사람들 정보를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시대니까, 사회적인 검증, 누구나 다 논의할 수 있다. 융합시대에 처한 상황은 한국이든 세계든 다 똑같다. 자동차 디자인의 경우 옛적에는 경험이 많은 디자이너 아니면 특수한 디자인을 접하기 어려웠으나 이젠 엔진과 메커니즘 연합체가 아닌 전기차가 나오는 시대다. 전자 부품, 전기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접근이 쉽다. 이제는 제품 디자인과 결합되어 디자인연합체를 만들 수 있다. 애플이 전기차를 직접 만들 만큼 접근 가능성이 무한대로 열려있다. 산업 현장도 그렇다. 이탈리아 밀라노가구박람회를 가보면, 가구브랜드만 있지 않고 국제경매사인 이베이(ebay) 브랜드도 부스를 차린다. 단순한 산업쇼나 나와야할 브랜드들이 디자인 전람회에도 어필을 시작한 것이다. 자동차와 가구와 텔레비전의 고민이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분명히 다른 범주지만, 어떻게 하면 인간생활을 더 편리하게 할 것인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줄 것인가의 고민은 다르지 않다. 앞으로는 사람들이 자기 분야를 스스로 가둘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어떤 면에서는 더 치열하고 힘들지 않을까. 경쟁자가 동종업계에 있는 게 아니라 사방에 있는 거니까.

△ 하 그동안 협력이 강조가 안됐다. 융합적인 시대에는 경쟁보다는 협력 개념으로 가야한다. 지금까지 사회가 경쟁을 시켰는데 이제는 협력을 시켜야하는 시대다. 어떻게 협력을 해서 좋은 결과물 만들까를 고민하며 같이 협력해 같이 이기는 방식을 찾는 사회로 가야한다. 관계 맺기, 건축과 도시의 관계, 건축 안에서의 여러 구성요소의 관계, 건축 디자인 결과물을 만드는 크리에이터간의 관계 등등. 완전히 다른 것, 창발적인 속성이 배어나오는 것, 그것이 다 관계인 거다. 방법론도 다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에서 나온다. 뛰어난 사람들 모은다고 좋은 작업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잘 꾸려야할 것이다. 저도 협업 많이 했는데, 잘 하는 사람들도 관계를 잘못 설정하면 깨어진다. 디자인 크리에이티브에서 진정한 협력 모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노 콜라보 이야기는 많이 해왔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협력, 교감, 연대까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이윤이나 비즈니스 차원이 주로 강조돼왔다. 어쨌든 진정한 협력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융복합 크리에이티브, 작가로서의 정체성, 생각의 결들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오늘 나온 디자인 콜라보 작업, 계기 등이 이런 융합이란 키워드에 자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긴 시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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