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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피상적(Superficial) 본질(Nature)로의 사회(Society) 

유운준(엘리스온 디렉터) 




1933년 7월 미국의 한 전화 전신 회사는 다음과 같은 인쇄 광고를 선보였다.


"당신의 전화(telephone)는 당신이다. 한순간 그것은 가깝거나 먼 여러 다른 곳에, 또 여러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이라는 존재를 퍼뜨리고 날려 보낸다. 바로 당신 자신의 일부가 모든 전화의 메시지 속에 있다. 당신의 생각들, 당신의 목소리, 당신의 미소, 당신의 인사말, 당신의 태도 그런 것들 말이다. 당신은 발화의 권력(the power of speech) 그 자체를 사용하듯이 전화를 사용하는데, 그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당신의 모든 부분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것을 쥐고 있는 한 당신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자가 된다. 당신은 비상시에 대처할 수 있고, 기회를 위해 준비되어 있으며, 많은 의견들을 받아들일 수 있고, 어떤 행동이라도 취할 자세가 되어 있는 것이다. 놀랄 만큼 특별한 사실은 당신이 전화를 사용하면 할수록 당신의 권력과 존재는 더욱 더 확장된다는 것이다."


1861년 독일의 물리학자, 필립 라이스(Johann Phillip Reis)에 의해 전기 신호로 음성을 전달하는 '전화(telephone)'의 개념이 등장한 이후, 세계는 한층 더 가까워진 소통의 체계를 가지게 되었다. 과거, 인간의 소통은 공간적 · 시간적 제약을 받았지만, 음성의 전기화는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은 까닭이다. 전화기의 발명은 분명 이전까지의 소통 시스템과 문화의 지형을 변화시켰고 우리는 그러한 소통 체계를 기반으로 새로운 매체적 진보를 꾀할 수 있었다. 시-공간은 가상화되었고 소통은 하나의 기능으로 점철되었다. 위의 광고 문구에서도 전화를 통한 소통의 기능성은 잘 드러난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전화의 기능성을 피력하는 부분이 아니라, 그로부터 사용자의 존재가 확립된다고 주장하는 '발화의 권력'이란 표현에서이다. 다소 과장된 듯한 이 미사여구는 미디어의 의해 사용자가 규정되고 또한 사용자 스스로가 미디어와 합일하여 자신의 존재 및 정체성을 획득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전화라는 미디어로 한정을 해보자면 이러한 표현은 왠지 과한 표현인 듯 보인다. 전화가 기존의 한계들을 허물었지만, 여전히 전화는 음성을 기반으로 한 단일 미디어였고, 그러한 미디어의 단일성에 의해 소통 및 시-공간의 가상화는 스테레오 타입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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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geographic map of USENET sites and routes from December 1986


그렇다면, 현재의 SNS는 어떨까? SNS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ing Service)의 축약어이다. 기술적으로는 이메일의 전신인 알파넷(Arpanet)이나 텍스트 기반의 분산 네트워크인 유즈넷(Usenet), 그리고 전자게시판(BBS) 등과 같은 기술적 시도들이 결합된 형태이다. SNS는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한 사회적인 소통 미디어들의 결정체인 셈인데, 온라인 프로그램과 플랫폼 전체를 아울러 소셜 미디어 환경이라 통칭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인터넷에 기반하여 실시간으로 텍스트와 이미지, 음성과 영상까지 지원하는 멀티 플랫폼이 바로 SNS 이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SNS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이전 미디어의 속성과 연결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전화기의 예와 같이 이후 등장한 TV와 컴퓨터,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들은 종전의 개념을 확장시키고 변화시킨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지점은 미디어가 제공하는 표면적 특성이 그 미디어를 수용하는 시대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원격현전과 미디어의 진화 


SNS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가능한 쌍방향 미디어이며, 상호작용적 소통에 기반한 집단 지성의 장으로도 기능한다. 모바일 테크놀로지는 이러한 SNS의 특성을 더욱 가속화시켜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어 있는 유비쿼터스적 환경을 구현하였다. 현대의 대중들은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원거리의 타인의 삶을 경험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기존 미디어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여 사용자 개인이 메시지 발화의 기점이 되는 1인 미디어 시대를 선언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미디어에 의한 원격현전의 현실화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점차 가상화시켰다. 우리는 미디어 속에 반영된 스스로의 모습으로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것이 현실이라고 믿는 역설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20세기 초 TV가 발명된 이후의 상황과 유사하다. 


미디어 이론가 권터 안더스(Gunther Anders)는 전통적인 현실과 가상의 이분법이 TV와 같은 매체에 의해 해체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TV 화면이 제공하는 이미지는 분명 현실 이미지이지만, TV가 놓여져 있는 거실 속의 현실은 아니다. 그는 현실도 아니며 허구도 아닌 이러한 제 3의 존재층을 팬텀(Phantom)이라는 용어로 설명하는데, 그의 논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텔레비전은 이렇게 팬텀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허구이면서 동시에 사실로 등장하는, 그리하여 존재하면서 실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리얼리티를 만들어낸다. 과거에 모상은 원본이 되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제작되었다. 가령 역사화는 사건이 발생한 다음에 그려진다. 텔레비전의 영상 역시 역사화처럼 원본(原本)의 모상(模像)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영상은 역사화와는 달리 사건의 발생과 모상의 제작 사이의 시간적 간극을 없애버린다. 그리고 우리 앞에 모상도 아니고 원본도 아닌 형태로 ‘실시간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원본과 모상의 존재론적 차이는 사라지고, 모상 자체가 현실의 직접성을 가지고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현상한다. 모상, 그것은 곧 현실이다. “삶이 꿈으로 간주되는 곳에서는 꿈이 삶으로 간주되듯이, 모든 현실이 팬텀으로 등장하는 곳에선 모든 팬텀이 현실이 된다.”


TV가 제공하는 세계는 일종의 허구이지만 사실이며, 현실인 동시에 가상이다. 만약 전화가 과거로부터 무수히 시도된 원격 현전(tele-presence)의 1차적 외연이라면 TV는 그보다 더욱 깊숙한 가상적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원거리에서 존재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현상을 TV는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TV 에서 이러한 원격현전과 가상화의 논의가 종결되지는 않는다. TV는 결국 송신자와 수신자의 위치가 결정되어 있는 일방향적 소통 매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큰 의미를 지니는데, TV의 시청자가 결국 자신을 투영하는 매체로서 TV 를 인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 속에서 펼쳐지는 가상 세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자각을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TV는 완전히 현실과 분리된 가상의 미디어가 된다. 한편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는 TV의 미래에 관해 보다 적극적으로 관찰하였다. 그는 TV 가 현재의 일방향적 한계를 넘어 '타인들과의 대화를 위한 창문으로서' 기능할 것이라고 예견하며 개방적인 그리고 쌍방향적 소통이 가능한 TV 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플루서의 이와 같은 견해는 TV가 가진 한계를 넘어 전화기의 기능과 융합된 새로운 미디어의 모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그가 제시한 TV의 새로운 모델은 현실과 가상의 이분법, 그리고 권터 안더스가 제기한 팬텀으로의 세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TV 가 지닌 강력한 가상성을 기반으로 수용자가 그러한 가상에 직접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환경적 토대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TV는 분명 이와같은 노선을 걷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TV가 개척한 가상 세계의 바통은 인터넷이 건네받았다. 인터넷은 컴퓨터의 강력한 프로그래밍 환경을 기반으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접속이 가능한 그야말로 열린 환경으로 진화하고 있다.


초기 인터넷은 그야말로 기능적 도구 자체였다. 군사용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서비스된 이후에도 인터넷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 이상의 것은 아니었고 대중들은 인터넷을 이용하게 되었지만, 그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성을 그 자체로부터 획득하지는 못하였다. 여기에서의 공간성이란 일종의 소통과 문화의 장으로서의 가상 공간인 셈인데, 어쩌면 이러한 한계에 대한 비판은 (인터)넷에 쏟아졌던 너무나도 많은 기대와 가능성에 관한 주목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초기 인터넷은 그 '연결성(Connectivity)'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연결성은 인터넷의 구조이자 의미 자체였고, 컴퓨터와 사람들, 센서들과 교통수단들, 전화기들과 빠르고 값싼 모든 것들의 연결을 가능하게 해주는 새로운 도구였다. 따라서 인터넷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기존 체계를 전복시키는 이데올로기적 환경이자 이상적인 가상 사회상으로 인식되었다. 과거의 TV가 제시했던 현실과 가상의 이분법 해체가 드디어 현실 세계에서 구현된다는 믿음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매체에 의해 가상화된 현실


인터넷(컴퓨터)은 종전의 미디어가 담당하던 텍스트(신문), 음성신호(전화기, 라디오), 이미지와 영상(TV) 등을 종합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총체적 장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특성이자 기존 미디어의 한계를 뛰어넘은 원격의사소통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인포메이션 아트(Information Arts)의 저자 스테픈 윌슨(Stephen Wilson)은 웹/인터넷의 독특한 원격 의사소통적 특징으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사항을 언급한다. '사람들 사이의 연결성(Connectivity between Persons), 협력과 그룹 작업 (Collaboration and Group Work), 분배된 수집 자료의 창조 (The Creation of Distributed Archives), 국제성 (Internationalism), 웹 문맥에 코멘트하기 (Comment on the Web Context)'가 그것인데, 주목할 만한 항목은 마지막 항목(웹 문맥에 코멘트하기)이다. 이 항목은 앞서의 네 가지 항목과는 달리 기존 미디어를 통해 수용할 수 없었던 영역이었다. 웹은 기존 미디어와는 달리 사용자가 직접 미디어에 의해 제공되는 콘텐츠로 접근할 수 있는 열린 환경이었으며, '코멘트하기'라는 수동적 행태를 넘어 웹의 문맥, 내용 자체를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능동성을 획득했다.


올리아 리알리나(Olia Lialina)의 웹 프로젝트인 <My Boyfriend Came Back From the War>은 인터넷 사용자 스스로의 개인 이야기를 공론화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 프로젝트였다. 간단한 그래픽과 텍스트로 이루어진 이 웹 페이지에는 전쟁에 참전한 남자친구라는 로맨틱한 소재가 등장한다. 사용자는 웹 프로젝트에 분할되어 숨어있는 이야기를 감상하며 직접 그 구조를 편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실험적 시도는 이전까지 제작자가 만들어놓은 이야기 구조 속에서 오로지 '감상'만 할 수 있었던 사용자를 창작자의 위치로 전이시켰으며 동시에 가상적 시-공간의 세계에 사용자가 진입할 수 있는 입구를 만들어놓았다. 이와 같은 인터넷의 능동적 참여 환경은 TV가 지닌 강력한 가상성을 기반으로 수용자가 그러한 가상에 직접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환경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었다. 미디어에 의한 시-공간의 가상화(Virtualization)는 사용자의 존재성 확립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실 세계의 제약에서 벗어남을 의미하는 가상화는 문맥의 지배에 놓일 수 밖에 없는 유약한 인간의 존재를 불변하는 존재로서 새롭게 잉태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디어가 수용자들의 지각방식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현실 자체의 존재론적 위상의 변화를 촉구할 것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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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Boyfriend Came Back From the War>, Olia Lialina, 1996



이와 같은 시도는 SNS로 대변되는 현재의 소셜 미디어 환경을 구축하는 데 있어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더 이상 대중은 권위와 위계질서에 묶여 사회 시스템을 수용하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로 남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공존하는 과거의 미디어(라디오, TV 등)를 보완하는 동시에 그들을 감시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지식은 공유되고 기회는 확장된다. 그리고 사용자의 삶은 실시간으로 이미지화 되어 전송되고 열람될 수 있게 되었다. 피에르 레비(Pierre Levy)는 이러한 변화를 사이버 문화의 특징으로 열거한다. 그는 새로운 미디어에 의해 파생된 사이버문화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보편성이 출현하는 것이라고 예견하며, 새로운 보편성은 더 이상 텍스트의 자기 충족성이나, 의미 작용의 고정성, 독립성과 관련하는 것이 아니며, 메시지들 간의 상호 연결이나 미래의 가상 공동체에 부단히 접속함으로서 구축되고 전파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SNS에 의한 더욱 본질적인 변화는 사용자들의 삶에서 발견된다. 인터넷에 기반한  SNS는 현실 세계에 적극적으로 침투한다. 기존의 웹은 현실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가상 세계였지만 현실 세계와는 분명한 구분되는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였다. 그러나 SNS는 현실 세계에 걸쳐있다. 즉, SNS는 가상적이라기보다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적 현상에 가깝다.



가상과 실재의 재구성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데리다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유령의 "복면 효과"를 예로 들며 통신 기술의 속성에 대해 언급한다. 요약하자면, "복면"에 의해 만들어진 "비가시적인 것의 은밀하고 포착할 수 없는 가시성"이 착용자에게 "견줄 수 없는 권력", "보이는 것 없이 보는 권력",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권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예컨데, 주체는 대상을 볼 수 있으나 대상은 주체를 인지할 수 없는 환경적 선결 조건이 수행될 때, 역설적으로 주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으며, 그로부터 권력이 파생된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비유는 글의 서두에서 제기하였던 전화기를 든 사용자의 '발화의 권력'과 연결된다. 그러나 차이점은 유령의 존재를 통해 인터넷, SNS사용자의 익명성과 페티시즘의 문제까지 접근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대중들은 인터넷과 SNS를 통해 익명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리고 여타의 미디어들과 마찬가지로 중독 증세 또한 발생시켰다. 모바일 테크놀로지와 결합된 인터넷과 SNS는 대중들의 삶 속에 밀접하게 그리고 깊숙하게 개입한다. 직접 소통의 한계 때문에 만들어진 미디어가 이제는 오히려 익명성이라는 복면과 더불어 진정한 소통을 저해하는 요소로서 인식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인간 유형과 사회의식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미디어에 의한 인간 유형의 변화는 과거로부터 관찰되어 왔다. 벤야민은 영화를 수용하는 대중들이 잠재적인 민주 집단이 될 것이라 전망했으며, 안더스는 TV에 의해 팬텀 세계가 만들어져 그로부터 '은둔자 대중(Massen-Eremiten)'이 등장할 것이라 예견했다. 인터넷과 SNS는 이러한 방향 모두를 포괄한다. 현재 대중들은 때로는 은둔자로서 때로는 진보적인 세력으로 미디어를 이용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새로운 대중, 사회적 유형을 등장시킨다. 미디어는 아우라를 직조한다. 생생한 표현이 가능한 영상을 통해 미디어는 리얼리즘을 재구성하고 가상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예술사에서 사진의 발명 이후, 현실과 괴리되었던 회화의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적 전략이 이제 우리의 삶 속에서 미디어의 표면으로 기능한다. 대중들은 자신들의 실제 모습보다 스스로가 어떻게 이미지화 되는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근본적 속성마저 디지털화되어가는 이 사회의 피상적 표면이 결국 우리의 본질로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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