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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시각예술의 불편함 

김최은영(미학, 경희대 겸임교수)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
The future is already here. It’s just unevenly distributed.
-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 -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그러나 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 한국사회의 반응은 뜨겁다. 마치 한 번도 본 적 없는 매머드(mammoth)를 기억하고 투사하듯 여러 분야에서 귀에도 걸고 코에도 건다. 당연한 일이다. 역사학자에게서 명명된 산업혁명은 기술의 발달로 인한 경제 구조를 바꾸며 사회의 지형 변화를 가져왔다. 새로운 사회에서는 그에 맞는 문화와 예술이 도출된다. 새로운 예술은 미처 조어(造語)되지 못한 채 창조되고 생산되며 팽창, 소비된다. 훗날 그 새롭던 예술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을 즈음에서야 언어가 정의되고 사조(思潮)로 귀결된다. 때문에 모든 사조는 과거의 기록인 동시에 기록되었던 당대(當代, Contemporary)의 NEW다.
뭐라고 불리건 간에 실제의 예술은 매체를 통해 표현된다. 근대 이후 혁명적인 모던 아트의 발자취가 이어지는 동안 산업혁명은 1차부터 3차까지 도래했고 사진, 인쇄, 영화, 텔레비전, 컴퓨터가 발전했다. 예술은 이들 매체의 영향을 받았고 예술적 아이디어의 기원과 새로운 매체에 대응하는 예술가들의 인식은 변화했다. 매체가 가진 테크놀로지의 미적 해석 등 예술과 매체의 기원을 살피는 것은 전술했듯이 이제 막 조어되고 기록되는 중이다.1)
페이스 팝콘(Faith Popcorn)과 애덤 한프트(Adam Hanft)가 공저한『미래생활사전』(을유문화사, 2003)에서는 인터넷 예술이 예술의 배포되고 전시되는 방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정적이며 벽에 기반한 예술은 새로운 방식에 자리를 내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의 추측이 가능했던 단서는 1975년 ‘비디오 아트’가 휘트니 비엔날레에 채택된 이후 35년 만에 2000년 ‘인터넷 예술’이 새로운 부문으로 채택된 사실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 시기는 컴퓨터와 통신 기술, 인터넷의 발전으로 상징되는 3차(1969) 산업혁명이자 디지털 혁명의 시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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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1-James Buckhouse in collaboration with Holly Brubach




미디어 아트에서 인터넷 아트로

인터넷 예술이라는 명칭을 획득한 제임스 벅하우스(James Buckhouse)의 2002년 작품인 <Tap>은 디아아트센터의 웹사이트(www.diacenter.org)를 비롯한 맨하탄 다운타운(Manhattan downtown)지역의 서점, 반스 앤 노블(Barnes & Noble) 등의 beaming station2)에서 자신의 PDA로 남녀 탭댄서(male/female tap dancer)를 다운 받는다. 사용자는 자신이 다운 받은 댄서에게 기본 16가지 동작을 연습시킬 수 있고, 새로운 안무를 창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이 연습시킨 댄서를 다른 PDA로 전송할 수도 있다. 혹은 디아 웹 사이트에 있는 permanent archive에 저장할 수도 있다. 작품 <Tap>은 무선 데이타 전송(wireless transmission of data)을 가능케 한 비밍 테크날러지(beaming technology)를 이용하여, PC앞에서만 가능했던 웹 아트의 영역을 데스크탑 컴퓨터(desktop computer)에서 벗어난 작업구상으로 그 영역을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댄서들이 안무를 연습하는 과정이 컴퓨터 프로그래밍(computer programming)과 유사하다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즉, “stealing step”과 “challenge”는 프로그래밍에서의 borrowing code 등과 비슷하고, 댄서가 다른 댄서의 특정 음이나 안무를 어떻게 하는지 풀려고 노력하는 것은 엔지니어링(engineering)과 비슷하다. 탭댄스는 코드(code)와 같이 modular, re-mixable, user들에 의해 교환이 가능하다. 여기에 있는 기본 16 동작들을 다시 리믹스(re-mix)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스텝(step)들을 합쳐서 새로운 루틴(routines)을 생산하게 된다. 이루틴이라는 단어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각각의 인스트럭션(instruction) 시리즈를 묘사하는 데에 쓰이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점은 디지털 데이터(digital data)를 단순한 재생산 가능한 정보의 다발로서만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 즉 창조의 씨앗으로 여긴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 씨앗을 싹트게 하는 것이 “연습(practice)”이다. 처음 댄서를 다운 받으면 스텝을 익히고 능숙한 댄서로 만들기 위해서 “연습”해야 한다. 연습이라는 것은 단순한 데이터와 이해(understanding), 단순한 정보 습득과 능숙함의 획득 사이를 구분하게 된다. “연습”은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 속 댄서와 다른 지점을 시사하는 키워드이자 4차 산업혁명에 해당하는 예술의 키워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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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2-Nam June Paik-Global Groove, 1973 https://youtu.be/7UXwhIQsYXY


탭댄서, 영상, 시각예술, 매체의 활용이라는 몇 가지 시각적 공통점으로 인해 3차 산업혁명 시대의 작가 백남준의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를 떠올리게 된다. 1973년에 제작된 <글로벌 그루브>는 뉴욕 WNET-TV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백남준의 작품으로 ‘앞으로 맨하탄 전화번호부 만큼 TV 가이드가 두꺼워 질 것’이라는 예언적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글로벌 그루브>에서는 탭댄스에서부터 인디언 나바호족의 북소리, 한국의 부채춤, 샬롯 무어먼의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각 문화권의 춤과 음악이 편집되어 보여진다. 백남준은 ‘글로벌 그루브와 세계 비디오 시장(1973)’이란 글을 통해 당대 텔레비전 영상 문화가 민족주의적 편향된 시각만을 전달하여 민족 간의 소통을 저해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4) 이 작품에 등장한 탭댄서는 자의적으로 움직이지만 시각예술가의 협업으로 사전에 조율된 동작과 범위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또한 4차 산업혁명권의 작품인 <Tap>에서 말하는 자생적 루틴에 해당하는 영역은 아티스트의 절대 권력인 편집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인스트럭션이란 용어 때문에 루틴을 명령어의 집합체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루틴은 인스트럭션(명령어)의 범주 안에서만 작용하진 않는다. 다시 말해 프로그래머는 자신이 설정한 명령어의 모든 경우의 수를 완벽하게 파악한 루틴을 목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편집으로 인해 재생된 영상은 결과물의 경우의 수가 이미 아트스트 혹은 프로그래머의 계획과 실행 안에 설정되어 있으며 뜻밖의 결과물이 파생된다면 오류 혹은 사고에 해당한다. 때문에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당대의 새로움이었으나 현재의 시각에선 디지털 데이터의 단순한 재생산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리터러시와 미디어 리터러시


백남준과 제임스 벅하우스의 차이는 리터러시(Literacy)와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디지털 문해력)의 차이점과 유사하다. 리터러시는 문자화된 기록물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일반 대중이 아닌 특권 계층에서만 리터러시 능력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리터러시가 단지 언어를 읽고, 쓰는 피상적인 의미만을 내포하는 개념은 아니다. 리터러시는 일차적으로 시대적으로 혹은 그 사회 혹은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커뮤니케이션 코드인 ‘언어’에 의해서 규정되어진다. 리터러시는 복잡한 사회적 환경과 상황 속에서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한 개념이다. 이제 리터러시는 단지 언어를 읽고 쓰는 능력에서 더 나아가 변화하는 사회에서의 적응 및 대처하는 능력으로 그 개념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확대된 개념에 새로운 매체가 보태진 미디어 리터러시는 다양한 매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며, 다양한 형태의 메시지에 접근하여 메시지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미디어 리터러시가 있는 사람은 인쇄매체와 방송매체를 해석하고, 평가하고 분석하고 생산할 수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단순히 어떠한 기술의 습득이 아니며, 미디어 산업이나 일반적인 미디어 내용의 패턴, 그리고 매체 효과와 관련된 지식구조의 습득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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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3-Literacy와 Media Literacy


미디어 리터러시는 인지적 차원 이상의 것으로 미학적·감정적·도덕적 계발까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있는 의사소통자는 개인적·공적인 삶에서 미디어를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청중과 미디어 내용과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미디어 내용이 사회적·문화적 맥락에서 생산되는 것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미디어의 상업적 본질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며, 특정한 청중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미디어를 사용하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읽기, 쓰기, 말하기, 컴퓨터 사용, 정보의 시각적 제시의 해독, 심지어는 음악적 제시의 해독 등 다양한 기능을 포함한다.6) 디지털 문해력은 기능적 IT 기술을 뛰어 넘어 더 다양한 디지털 행동, 관행 및 정체성을 묘사합니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본질적으로 다양하고 변화하는 기술이 뒷받침하는 학문적, 전문적 관행의 집합입니다. 위에 인용된 이 정의는 대학, 대학 서비스, 학과, 주제 영역 또는 전문 환경과 같은 특정 상황에서 디지털 문해력이 핵심적인 것을 탐색하는 출발점으로 사용될 수 있다.7)

데이터와 로봇, 사이버 공간 그리고 그 너머로

어쩌면 디지털 문해력와 관련된 시각예술작품을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아트센터 나비에서 개최된《네오토피아: 데이터와 휴머니티(Neotopia: Data and Humanity)》전시는 ‘데이터’를 활용한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의 교차점에서 ‘보다 나은 삶과 세상’을 주제로 전개되었다. 데이터라는 키워드와 질문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로 변경하여 사용해도 무방할 만큼 유사한 구조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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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4-나비 이아이랩, 팀보이드, 조영각, 송준봉, 배재혁-예술 만들기_

증시에 대하여_산업용 로봇팔, PC,주식 시장 데이터베이스, 종이, 잉크펜, 2채널 스피커_2017


<예술 만들기-증시에 대하여(Making Art - for Stock Market)>는 한국의 주가지수를 바탕으로 데이터의 가공을 통해 사운드를 생성하고, 로봇팔을 통해 그림을 그려내는 구조의 작업이다. 창작 영역인 회화/음악 분야를 데이터와 로봇이라는 소재와 도구를 통해 해석한 매체의 확장을 야기한다. 단순한 데이터의 가공이 아닌 유기적이며 자생적인 개체로 데이터를 인식하고 비물질과 사이버네틱스 공간을 현실로 끌어내어 실존적인 모습을 갖추게 한다. 이는 인간 중심의 환경에서 부유하는 재화를 기계문명 사회 속 예술의 매개를 통해 시청각 형태로 구체화하여 현 사회의 시스템 일부를 논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동시대의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환경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라 설정했다. 작업 생성 과정을 통해 사회 구조 내의 특정한 흐름에 따라 인간이 사고하는 방식과 상황이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가설을 시각화한 작업이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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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5-Arnaud Colinart, Amaury La Burthe, Peter Middleton, James Spinney-실명에 관한 노트-어둠 속으로_비디오, HTC 바이브, PC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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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6-Morehshin Allahyari, Daniel Rourke-더 3D 에디티비스트 쿡북_2016


<실명에 관한 노트: 어둠 속으로>는 시력을 잃은 신학자 존 헐(John Hull)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가상 현실(VR) 작업이다. 존 헐의 실제 오디오 다이어리를 바탕으로 구성된 관객 참여형 다큐멘터리 영화는 감각적이고 심리적인 방식으로 관객에게 접근한다. 익숙하지 않은 스토리텔링과 마치 게임플레이 방식처럼 진행되는 영화적 화면은 실명이라는 미경험치의 신체적 인지와 감성적 경험을 가상현실을 통해 제시한다. 각 장면은 오디오 다이어리에 녹음된 기억과 순간들은 특정 위치를 나타내며, 입체 음향 오디오와 실시간 3D 애니메이션을 통해 ‘시각 너머의 세계’에 완전하게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9) 상상력이라는 코드로 해석하기엔 선험적인 환경이 실존하는 작품이다. 더구나 장애라는 불편한 경험에 대한 기술과 예술적 접근은 단순한 체험이라는 허술한 결론으로 마무리 지을 수 없는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은 기술과 예술 외 다른 무엇이 반드시 필요하다. 3차 산업혁명과 4차 산업혁명의 오버랩된 환경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가상현실을 통한 실명의 경험치는 어떠한 단어로 조어되어야 할 것인가. <더 3D 에디티비스트 쿡북(The 3D Additivist Cookbook)>은 100명이 넘는 세계적인 예술가, 활동가 및 이론가의 창의적이고 도발적인 작업에 대한 무료 개요서로 3D 프린팅에 사용하는 .obj와 .stl 파일을 포함한 책이다. 뿐만 아니라 허구적 텍스트와 템플릿, 레시피, (비)실용적 디자인, 그리고 역사상 가장 모순적인 시기인 오늘날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방법론이 들어있다. <더 3D 애디티비스트 매니페스토>와 <더 3D 애디티비스트 쿡북>은 각 개인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과연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10) 3D에 대한 다중적 질문을 내재한 작품은 예술작품에 있어 예술가의 영역을 되묻는다. 이미 마르쉘 뒤샹의 레디메이드라는 미술적 혁명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해 아래 새 것과 예술가의 손으로만 제작된 작품을 예술로 명명하진 않는다. 이제는 기술과 아이디어의 공유가 창작이라는 범주와 어떠한 관계항을 맺어야 하는 지 공론화하며 정답이 아닌 해답을 구하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임을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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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7-Daito Manabe, 2bit Ishii, Hirofumi Tsukamoto, Yusuke Tomoto-chains_비트코인, 프로젝터, 맥북, 스피커_2016


4차 산업혁명의 신규 언어 중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이 높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가장 성공적 사례는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기존의 법정 화폐처럼 중앙 기구에 기대지 않는다. 하지만 국경을 넘어 복잡한 익명 거래를 진행할 수 있어 경제 활동이 이뤄지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만들어냈다. 이와 동시에 돈세탁, 반사회 단체에 대한 자금 지원 등 그릇된 방식으로 비트코인을 활용할 가능성 또한 제기되었다. 따라서 비트코인에 대한 각국의 대응은 서로 다르다. 비트코인은 이미 사회 안에 자리 잡았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개발에 참여했던 주요 개발자 가운데 한 명은 코인 채굴이 일부에 의해서만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작업에서는 블록체인을 탐구하고자 이 기술을 시각화했다.11) 


본 글에서 언급된 대부분의 예술 작품에 해당하지만 굳이 다시 한번 들춰서 얘기하자면 ‘블록체인’, ‘비트코인’ 이라는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단어를 제외하면 예술가의 현실과 사회에 대한 이전의 창작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 이상 예술은 예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등장한 용어의 현실 사회에서의 활용과 쓰임새는 사회 전반 구성원 모두에게 해당하는 담론이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사회의 변화와 변화로 인한 사이와 차이에 대해 민감하고 예민했다. 때문에 새로운 환경과 구조에 대한 예술적 접근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고 반응이다. 다만 매체의 영향력 안에 빠른 속도로 낡아가는 미디어 테크놀러지의 영역이 아직 정론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쏟아지는 기술에 대해 예술은 감탄 이상의 감동이라는 태생적 역할을 얼마나 수행해 낼 것인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로보틱스, 3D 프린터, 가상현실, 인공지능, 그리고 빅데이터 등의 첨단기술로 작업을 하는 예술가의 작품은 어떤 해석을 필요로 하며 어떤 방식으로 예술성을 부여 받는가. 

사실 이러한 질문은 이전에도 있었다. 붓과 돌에서 텔레비전과 컴퓨터로, 한 순간만의 인상을 그리는 얼간이들과 야수들에게 둘러싸인 도나텔러, 종교적 규칙에서 인간성 회복으로, 원만하게 흘러가지 못하고 덜컥거렸던 미술사의 전환점에는 언제나 새로운 가치와 의미에 대한 길고 지난한 확인 작업과 시간이 필요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정동암, 『미디어 아트』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참조.
2) 직역하자면 전송역이다. 그러나 ‘beaming’ 역시 기존 사전적 의미 외 현실적으로 통용되는 뜻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다만 문맥상 온라인 데이터 전송 플랫폼정도로 해석해야 할 수 있을 것이다. 
3) http://www.diacenter.org/buckhouse
4)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2273&cid=58862&categoryId=58872
5) 구인환 『Basic 고교생을 위한 국어 용어사전』 신원문화사, 2006
6) 구인환 『Basic 고교생을 위한 국어 용어사전』 신원문화사, 2006
7) https://teachinginhighered.com/2017/02/07/digital-literacy
8) 《네오토피아: 데이터와 휴머니티(Neotopia: Data and Humanity)》 아트센터 나비, 2017. p.89 참조 
9) 《네오토피아: 데이터와 휴머니티(Neotopia: Data and Humanity)》 아트센터 나비, 2017. p.115 참조
10) 《네오토피아: 데이터와 휴머니티(Neotopia: Data and Humanity)》 아트센터 나비, 2017. p.145 인용
11) 《네오토피아: 데이터와 휴머니티(Neotopia: Data and Humanity)》 아트센터 나비, 2017. p.5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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