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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아트 - 예술 체험의 새로운 가능

김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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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의 일상생활이 변화함에 따라 미술에 있어서도 디지털과 관련된 작업들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디지털 아트는 국내의 미술현장에서 아날로그 아트와 디지털 아트라는 대립 구도를 지니며, 그 영역이 확장되어 가고 있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소통의 수단으로 소유하고 있는 모바일은 디지털 분야에서도 일반 대중들이 쉽게 접하는 매체로서 모바일 아트는 디지털 아트 분야에 있어서 가장 대중적인 요소들을 많이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국내의 미술 현장에서 모바일을 매개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모바일 아트의 현황을 알아보고자 한다.

모바일로 매체로 하여 주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모바일을 매개로 인터랙티브 아트 작업을 하는 전지윤 작가와 미디어 아티스트인 윤지현 작가와 함께 '플랜B'로 활동하는 김태윤 작가가 있다. ‘플랜 B' 의 김태윤 작가는 작가 이전에 국내의 한 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으며, 'INDAF 2010'에서 처음 모바일 아트 작업을 시작으로 현재는 모바일 아트 뿐 아니라 음악 작업과 더불어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윤지현 작가는 국내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미국에서 예술 공학(Art & technology)을 공부하고 귀국하여 현재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여러 미디어들을 활용한 작품들을 펼치고 있다. 모바일 센서를 통해 감각의 상호작용을 구현하고자 하는 전지윤 작가는 서강대에서 예술 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한독미디어대학원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면서 다양한 작품 활동들을 병행하고 있다.


모바일 아트란 무엇인가
모바일은 주로 자기와 절친하게 지내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거나, 업무상 중요한 연락을 취해야 하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어, ‘대중 일반’과 연결되어 있는 인터넷과는 사뭇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모바일 아트라는 개념은 이러한 모바일의 특성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전지윤 작가는 그녀의 연구논문에서, 예술적 표현의 매개체로서 모바일은 3가지의 특성을 가진다고 보았다. 첫째, 모바일은 이동성을 가지므로 보다 많은 관람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둘째, 모바일은 친밀성이 있어 쉽게 관람객에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한다는 점 셋째, 모바일이 예술적 표현과 소통을 시도하여 관람객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모바일 아트는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개인 미디어의 특성을 반영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현대미술에서는 인터넷과 완젼한 융합을 시도하는 스마트폰의 활용도가 높아져감에 따라 모바일아트를 ‘스마트폰을 사용한 예술’로서 정의하기도 한다. 스마트폰은 다양한 센서들이 집약되어 있으므로 이를 활용해 관람객의 참여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전지윤 작가는 스마트폰을 통해 관람객과 소통하고자 하는 작업들을 지속적으로 해 왔다. 특히 <더 미디엄>에서 열렸던 <Data Fantasy>에서는 ‘ 우리가 일상적으로 늘 이용하는 모바일에서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데이터가 만들어 내는 환상에 관한, 회복되지 않는 감성적 질량에 대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전지윤 작가를 만나 모바일 아트 작업과 작업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표현에 있어서 모바일 미디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전지윤 작가 (이하 전): 저는 스마트폰에 내장된 다양한 센서들을 이용하여 청각이라던지, 터치라던지, 시각이라던지, 오감을 확장시키는 기기로서 사용을 하고 있어요. 표현하기에 있어서 모바일은 가장 용이한 미디어인 것 같아요. 제 논문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에서의 인터랙션의 모호성, 난해함... 이런 것들이 제 작품이 하나의 사례가 되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모바일은 아이들도 접근하기 쉬운 미디어니까요. 그래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대할 때, 감성적인 부분에서 좀 더 직관적이면 좋겠다는 점에서 모바일로 작업을 했죠.

특히, 증강현실은 현실 시점에서 기억을 보여준다던지, 어떤 곳의 이면을 보여주는 데에 이용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가장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모바일이라고 생각해서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모바일아트 작업의 방향성

Q. 모바일 아트를 작업하면서 지향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전: 저는 컨텍스트에 대한 인터랙션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보고 느끼는 것은 고정적인 것이고, 뭔가 스위치 같은 것을 눌러서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강의를 나가서도 학생들에게 ‘관람객을 스위치로 만들지 마라’ 고 얘기를 합니다. 그 사람은 작동하기 위해서 'on'을 켜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구조를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해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기 위한 과정, 그 과정을 지나가면서 관람객이 저랑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하는 것이죠. 관람객이 그 컨텍스트를 끝까지 읽기 위해 하는 일련의 수행과정이 있는 것이죠. 저는 그 과정들이 문맥을 좁혀 들어가서 결국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공유하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그런 것들을 좋아해요. 그런 소설도 좋아하고... 그래서 계속 그런 식의 작업들을 해 오고 있어요. 그런데 (작품을) 보면 되게 단순해요. 저는 제 작업을 복잡하거나 헷갈리게 하지 않고, 표면적으로 힌트를 주거나, 아예 죽 늘어놓고 단순화 시켜서 표현해요. 저렇게 늘어놓고 단순화 시켜서 사람들을 앞에서 서게 하지만, 영상이나 메시지라든지 표현에서 주는 힌트들을 관람객들이 조합을 해서 하나로 갈 수 있게 해요.

예전에 사비나 미술관에서 소셜 아트 전시를 했어요. 인사동 프로젝트였는데... 그 작업은 인사동에 11 가지 스팟을 정하고 특정 위치에 서면 증강현실로 영상을 볼 수 있게 하는 작업이에요. 제가 정한 스팟에 가장 근접하면 플래그가 지도위에 표시되고, 그 것을 누르면 라인이 나타나서 그 장소에 라인을 맞추고 플레이를 누르면 증강현실로 제 배우들을 볼 수 있는 것이죠. 사실 그게 엄밀히 말해서 증강현실은 아니에요. 그 라인이 매칭이 되면 스마트폰에서 준비를 하고 있다가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재생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근데 인터랙션을 하는 부분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어서 그렇게 수정을 한 것이죠. 그 작업은 11개의 스토리 라인이 있는데,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내용을 보게 되기 때문에 스토리도 제 각각 달라지는 것이죠. 저는 10대에도, 20대에도, 30대에도, 40대에도 인사동에 있었기 때문에, 그 기억에 관한 것들을 11개의 스팟에다 심어놨어요. 그러다보니 어떤 곳은 시간이 지나 간판 같은 것이 없어지기도 하고요... 계속 바뀌더라고요. 앞으로는 전시장이 아닌 외부에서 전시하는 방향으로 바뀔 것 같아요.

‘모바일은 내게 물감과 같은 것’이라고 하는 전지윤 작가의 표현대로 그녀의 작업들은 전시 공간 뿐 아니라 외부 공간에서도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중들이 미디어아트 작품을 난해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바일의 이동성과 친밀성, 참여와 소통 가능성은 미디어아트의 난해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그녀의 노력은 의미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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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아트에 대한 반응

그러나, 아직까지 일반 대중들에게는 미술관에서 자주 접하고, 또 익숙한 회화 작업과는 다르게 모바일 아트라는 장르 자체가 생소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에 대하여 2010년부터 모바일아트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온 김태윤 작가와 회화 작가이자 미디어 아티스트 윤지현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Q. 일반 대중들은 미디어아트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고 얘기해요.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을 해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미디어와 예술적인 부분들을 결합하면 어느 정도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는데요. 윤작가님은 미디어아트 작업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페인팅 작업이 정서적으로 더 다가가기 쉬운 것 같다고 하셨는데, 예전에 회화작업을 하셨을 때랑 비교해 봤을 때, 미디어아트 작업에 대한 관람자들의 반응은 어떻게 다르다고 느꼈나요?

윤지현 작가(이하 윤): 예전보다는 감상에 대해서 얘기하는 관객들이 더 많아 졌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미디어아트가 너무 어려워서 관객들이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는 게, 사실 현대미술도 어려운 게 많잖아요. 하얀 텅 빈 캔버스 하나 걸어놓고, 사람들이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라고 생각해보면 그것도 어려울 수 있거든요. 근데 미디어 아트라고 해서 꼭 친근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을까? 사실 그런 부분들로 인해서 즉각적으로 관람객으로부터 반응이 오는 것들, 그 자리에서 바로 웃을 수 있는 그런 작업들을 원하다 보니까... 요즘 그런 미디어 아트 작가들의 자성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예술이라는 것이 사실 다 똑같은 것들이고, 어떤 ‘미디엄’을 쓰고 있는지에 대한, 말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인데...
저도 처음에는 미디어가 일반대중들과 가깝다고 생각해서 미디어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거든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평소에 많이 쓰는 매체들을 이용하면 평소에 내가 쓰고자 하는 바들을 전달하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 똑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서, 같은 한국말들을 쓴다고 해서 내 생각을 100퍼센트 다 전달을 한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러다보니까, 하는 얘기는 똑같다하더라도, 과연 저 사람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뭔가를 하는 건가? 로 다시 질문을 되돌리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요.

김태윤 작가(이하 김): ‘쉽다’라는 정의가 모호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내 생각과 비슷하기를 원할 때도 있지만, 다양한 여지를 묻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요. 예전에 서비스 쪽에서 일을 했었는데, 서비스를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명확하거든요. 어떤 기능을 구현해서 이 사람이 편리하게 쓰면 이게 전달이 된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기능적인 부분만 놓고 본다면 그렇지만 거기에는 정서적인 부분이 빠져 있어요. 내가 이 기능들을 쓰면 어떤 정서적인 만족감을 얻는다는 그 부분은 빠져 있는데, 그 프레임을 그대로 미술계로 들고 왔을 때, 아니 그 프레임이 없어도, 현대미술을 관람하고 나서 느끼는 불편함이 있거든요. 그것을 차용한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도 처음 미디어아트를 하게 되었을 때 든 생각은, 미디어 아트 전시관이 뭔가 과학박물관에 온 것 같았고, 별로 어렵지 않은 기술을 쓰면서, 그 의미를 봐도 별로 대단한 내용인 것 같지 않은데, 그냥 사람들을 가지고 노는 듯한... 소위 말하는 사기를 치는 것 같은? 그런 느낌들이 있었거든요. 그것을 그냥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건 미디어 아트에 국한된 건 아니지만, 그런 반응들이 천차만별이죠. 그러다보니까 미디어 아트를 단순히 ‘소통하기 쉽게 하는 도구’로만 바라보기는 힘든 상황인 것 같고, 아티스트 개인의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작품을 봤을 때 직관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기를 선호하는 작가가 있고, 그냥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는데 내 방식대로, 레이어를 많이 두어서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여기까지 이해하라고 하는 식이 있죠. 근데 그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사실 인터넷에 곡 하나가 업로드 되면 사람들한테 퍼지는 속도만 봐도, 그 반응이 어떤지를 알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예술이라는 것도 기술적인 의미에서 다가가기 쉽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 것 같은데요. 그것을 수용하는 입장에서는 대중 미디어아트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생각해보면, 그것은 지금 상황에선... 좀 어렵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놀이공원에 있는 인터랙티브 장치 같은 느낌의 작업, 아니면, 아예 돈을 많이 들여서 블록버스터 급으로 하는 식으로... 오히려 돈이 더 많이 들어가는 거죠, 소통을 하기 위해서.


예술은 대중과의 소통

모바일 아트는 회화와 마찬가지로 대중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데에 있다. 모바일은 그 표현 수단일 뿐 회화와는 다르지 않다. 즉, 어떤 미디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어떤 기능을 사용한다고 해서 대중들에게 어느 것이 더 쉽다고 말할 수는 없다.
김: 모바일로 쉽게 접근한다고 앱을 만들어 놓아도, 사람들이 다운로드를 받지 않더라구요. 그냥 월 페이퍼(바탕화면용 그림) 다운 받아본다는 그런 느낌... 우리가 미술관에 가면 유명한 작가들 전시를 보고 나오면 맨 끝에 있는 아트샵에서 레플리카를 싼 가격에 판매하잖아요. 그런데 미디어아트는 작품 복제가 되니까 싼 가격에 구매를 할 수가 있는데, 그걸 작품으로 안 느끼고 그냥 부가적인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냥 보통 웹서핑이나 SNS 같은걸 하면서 한번 보고 소비해 버리는 정보와 같은 것이죠?

김 : 그렇죠. 두 개의 생각하는 도메인이 너무 다른 거잖아요. 관객입장에서도.

윤 : 소위 말하는 미디어라는 것에 대해 효율성에만 너무 집중하는 것은 아닌가. 좋은 면만 바라본다면 소통하기 쉬운 도구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이면에 있는 부분들, 굉장히 소비가 빠르고, 얼마 오래가지 못하는 그런 면들을 들여다보면 과연 빠르고 효율적이라고 해서 소통이 잘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거꾸로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실 전시장에 있으면 페인팅하고 미디어 아트하고 비교해 봤을 때, 관람하는 시간이 페인팅이 더 오래가는 것 같아요. 미디어 아트는 어? 안되네? 고장 났어! 이게 다에요. (일동 웃음)

윤: 일단 모든 미디어들이 나(관람자)에게 다 손짓을 해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어요. 그래서 나에게 반응을 안 해주면, 손을 안 흔들어 주면 무시해버리죠. 그런데 페인팅은 나에게 고통을 주거든요. 어쨌든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해요. 그래서 앉아서 뭔가를 찾아내려고 하는 그런 부분들이 조금 관찰이 되는데, 미디어 아트 같은 경우에는 그냥 관람하는 것도 보면 속도가 빠른 것 같고, 비디오 같은 경우에는 앉아서 보기가 힘든 것 같아요.

요즘 같은 세상에 요약된 것들, 드라마도 스킵해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비디오 작업도 한 5 초정도 보다가, 나의 관심사와 맞지 않으면 그냥 가는 거죠. 휴대폰과 같은 미디어들은 개인화 되어 있잖아요. 공공의 데이터가 많이 존재하더라도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정보를 선별해서 보고, 내 관심사가 아닌 것들은 관심을 많이 안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정보자체가 개인화 되어있고, 정작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들, 소외된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좀 회피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서... 예전에는 저는 미디어 자체를 하나의 수단으로서의 매력, 그런 장점들 때문에 작업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미디어가 점점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미디어라는 것이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요.


모바일은 ‘1인 미디어’

이제는 모바일이라는 그 미디어 자체가 아니라, 모바일이 담고 있는 수많은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 주목해야한다. 모바일은 개인화된 1인 미디어의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적 취향에 맞춰 정보를 선별해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특성 때문에 모바일을 매개로 미디어 아트를 한다는 것이 아티스트들에겐 오히려 풀어가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작업을 시작하게 된 초반에는 왜 꼭 미술관에 가서 작업을 봐야하지? 그런 의문을 갖고 시작했었는데. 사람들이 미술관에 오지 않으면 집에서 인터넷에서 본다는 그것을 예술이라는 카테고리에 두질 않아요. 현장성이 있고, 눈에 보이고, 만져지고, 뭔가 물성을 통하지 않으면 그것을 예술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똑같은 사각의 화면이지만 감동을 받기 힘든 그런 게 있더라구요. 똑같은 작업이 있더라도, 좋은 해상도와 큰 사이즈의 모니터... 그런 게 수반이 되면 훨씬 더 작업이 좋게 느껴지게 마련이거든요.

김: 소통의 관점에서만 보면 굳이 오프라인에서가 아니라 온라인에서 싼 가격에 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그런 컨텐츠들과 같이 가격이 낮아지는 순간, 예술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게 되는, 아까 말한 것처럼 기념품 같이 느껴버리는 것 같아요. 무한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술이라는 장르에 기대하는 것이 있는 거죠. 그것이 아무리 기술을 가지고 사람들한테 접근을 하려고 해도, 그것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요.

멀티미디어 시대의 예술은 원본의 유일성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전시를 통한 '메시지'의 교감에 중점을 둔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그의 논문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1935)> 에서 사진기술의 발달, 철도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영상기술의 발달이 예술의 본질적 ‘아우라’를 붕괴시킨다고 말하였다. 또한, 그러한 아우라의 붕괴가 예술의 대중성으로 이끌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김태윤 작가가 말한 '오늘날의 사람들이 예술이라는 장르에 대해 경험적으로 기대하는 바가 존재하는 것 같다.' 는 부분은 흥미롭다.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사람들이 모바일이나 웹 공간에서 ‘ 디지털 복제물’을 예술이라고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예술에 대해 자신만의 정의('아우라' 또는 '원본')를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자신의 예술의 정의에서 벗어난 작품들은 예술 작품이 아닌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닐까.


‘소통’에 대한 서로 다른 정의

Q. 그런데 미술관에 가도 미디어아트는 소통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일단 미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을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같은데 가면, 설명을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던데요. 사실 저도 잘 모를 때가 많고요. (웃음)

김 : (웃음) 근데 작가들도 모르고 작업하는 경우도 있어요.

윤 : 피카소가 그렇게 얘기했잖아요. 수학이 아니라고 자기 작품은. 프렌치프라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너는 이해를 하냐? 이런 얘기를 했다잖아요. 예전에 인상파 그림이 살롱에 처음 나왔을 때, 주변 반응이 안 좋았잖아요. 그래서 한 여고생이 취재를 하러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그림을 이해못해요, 라고 얘기했더니, 왜 이해를 하려고 하냐고, 내 작품은 수학이 아닌데. 그러니까, 어떤 순수한 예술에서는 이해하려고 하는 측면보다는 느끼려고 하고, 감상하려고 하고, 미디어아트는 이해하려고 하다보니까, 어떤 접근 자체가 달라져 버리는 거죠.

그러다보니까 작가들도 이제, 쉽게 한다고 했는데 계속 사람들이 이해하려고만 하다보니까 어떤 방법적인 답을 주려고 하다보니까 뻔해지는 경향도 있고.

김: 감각적이거나 어렵거나. 작가주의거나 수용자에게 아예 맡기거나?

윤 : 그렇죠.

김 : 그럼 그 중간은 약간 어중간하게 붕 뜨게 되는 건가요?

윤 : 그렇죠. 우리처럼 (웃음)

김 : 아예 미디어아트라고 생각 안하고 그냥 표현 매체로 가는 사람이 있고, 그래도 인터랙션이나 사용자 경험이나 이런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쪽으로 풀어 가시는 분도 있고.

윤 : 그래서 미술관 같은데서 그림을 어떻게 봐야 되요? 한다면. 일단 절대 도슨트 설명이나 귀에다 꽂아주는 최첨단의 설명을 절대 듣지 말라고 해요. 정 필요하면 일단 한 바퀴 보고나서 자기가 어떻게 느끼는지 본 담에 설명을 듣는 것은 좋은데, 들어갈 때부터 입구에서부터 주잖아요. 그러다보니까 내가 어떤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이 들기도 전에, 딴 사람이 정리해놓은 정답도 아닌 그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들어버리니까, 벌써 내 생각이 없어져 버리는 거죠. 미디어아트도 마찬가지에요. 일단 전시장에서 왜 설명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고요 저는. 미술관에서 서비스라고 생각을 해서 그런 것들을 제공을 하긴 하죠. 하지만 내가 느끼고 내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를 않는 거에요. 미술관에서 조차.

김 : 소통의 정의가 너무 다른 거죠. 소통의 정의라... 작품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소통이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으니까요?

윤 : 내가 보고 이해하려고 하고,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내가 이작가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할까 라고 생각하는 거랑, 처음부터 생각이나 평론가의 글을 먼저 읽고 들어 가는거랑 분명 생각의 관점이 달라질 거라는 거죠. 시각도 달라지고. 그렇기 때문에 꼭 이해하려고 전시를 보러 가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말 그대로 여가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여가처럼 느끼지 않고 뭔가 숙제하려고 전시장을 찾는 학생들도 많다보니까. 남의 생각을 계속 주입 받으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좀 이해가 안되죠.

김 : 아이러니한 게, 스마트 폰이 나오며서 개성을 강조하고 그런 세상이 된 것처럼 나오잖아요. 아이폰이 나오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creativity’가 있고 세상이 정말 쉽게 ‘너희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이렇게 가고 있는데, 사실을 이걸 이용해서 이를테면 카톡 단체방이라던가 이런걸 보면 오히려 같은 생각을 강요받거나 같은 정보를 갖는다는 생각이 오히려 더 많이 들거든요. 개인의 어떤 차이가 발전되는 방향으로 의견이 조화가 되는 것이 아니고. 스마트 폰이 나오면서 IT 쪽에서는 그걸 중요한 시점으로 봐요. 그걸 에코시스템과 같이 어떤 것이 나왔기 때문에 시대가 변한 것이 아니거든요. 어떤 것이 나옴으로서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자체가 바뀌고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속도 자체가 두 배 이상 빨라지고 있는 게 가장 큰 변화라고 보는데, 미디어 아티스트들에게 그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어요. 전통 미술관에 있는 어떤 형식만 빌려서 미디어를 하는 작가들이 많고요.

제가 관심 있는 것들은 기술들이 우리의 사람의 행동이나 앞으로의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더 많거든요. 모바일 아트라고 해서, 들고 다니면서 본다.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죠. 분명 더 큰 의미가 있었고, 단지 기술을 썼기 때문에 이렇다 라는 것 보다는 어떤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더 조명을 많이 하고 서로 얘기를 하고 그럼으로써 작품을 만들고 바라고 하는 것들이 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시도들이 있기는 하는데 여전히 정부 사업이나 이런 끼워 맞추기 형의 그런식으로 많이 되있죠. 그런 측면에서보면 미디어 아트라고 하는게 앞으로 얘기할게 더 많은거 같아요. 근데 지금은 단지 겉보기만 조명이 된 점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윤 : 미디어 자체의 기술을 써서 미디어아트가 아니고, 소위 말하는 뉴 미디어라고 하는 것들 디지털 미디어라고 하는 것들 자체도 우리 일상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니까 사회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이것이 또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들 이런 것들도 같이 봐야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사회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작동하고 있는지, 이런 것들도 같이 작업에 담아 가려고 하는 게 지금 제가 태윤씨와 같이 하는 것들이에요.

예전에 미국에서 공부할 때 어드바이져한테... “학교 잘못 왔다” 고 하면서. (웃음) 데이비드 라는 작가 논문들을 다 읽어보래요. 인터랙티브 작가인데 거꾸로 인간의 행동에 대한 연구들을 해요. ‘사람들을 어떻게 꾈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거꾸로 그 로봇이나 그런 작업들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연구하는, 그런 연구들을 하더라구요. 그럼 어차피 상호작용을 한다면 내가 손을 내밀어서 상대방이 반응을 하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려면, 일반적인 사람들의 행동들이 심리들을 더 이해해야 한다는 거죠.

- 상호작용이라는 한번이 아니라 계속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건데, 인터랙션 아트라는 게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센서가 반응하고 사람들이 느끼고 그걸로 끝이 아니잖아요.
김: 매개라는 개념이 공기처럼 전달을 해줘야하는데, 사실 너무 잘 알면 매개가 필요 없거든요? 사람들이 그걸 무시하고. 팔 한번 내밀거고 이 사람이 그걸 보면 소통이 더 잘 될 거야 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건 겉에만 보는 거고 속을 볼 수 없는거고, 관찰을 통해서 연구를 해서 매개하는 것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왔는데, 지금은 센서나 이런 것을 떠나서 이 사람이 페이스북을 통해서 나한테 얘기를 하든, 전화로 얘기를 하든 컴퓨터 입장에서 보면 다른 사람이예요. 그런데 나는 내 머릿속에서 그걸 한사람으로 합치거든요. 미디어는 그걸 못한다는거죠. 사람들은 그 사람에 대한 경험을 하면서 그 어떤 환경 변수가 작용하는데, 지금의 어떤 미디어 매개를 바라보는 입장은 그냥 빠르게 해주면 된다. 그냥 LTE로 깔아주면 된다. HD, UHD로 바꿔주면 된다. 고정도 수준에서 기술 중심적인 혁신을 하고 있는 거죠. 근데 그게 거의 한계에 왔다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 기술적 발전에서요?

김: 네 그렇죠. 왜냐면 4K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K가 HD고 HD의 레벨인데, 근데 8K까지 되면 인간의 시야각 범위에서 거실에서 볼 수 있는 범위를 벗어 난데요. 그럼 더 이상 그 해상도에 대한 의미가 없는거에요. 더 생생하게 느낄 수가 없는, 그건 이제 4K로 가고 있어요. 영화 촬영은 8K로 찍고 있어요.

그걸 극장에서는 4K로 줄여서 보여주고 있는 건데, 그게 몇 년 뒤면 가정에 들어오겠죠. HD가 가정으로 들어온 것처럼. 그럼 그 다음은 뭐가 될 거냐 하는 거죠. 사운드도 마찬가지고요. ‘현장에 있는 것처럼 보고 느끼게 한다.’ 그러한 지금까지 기술적 발전에서 오는 그런 것이 사람에게 감동을 주진 못한다는 거죠. 화면으로 사람을 보면 사람의 피부 모공까지 보이죠. 그런데 그게 오히려 몰입에 방해가 된다는 거죠.

스토리에 몰입한다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런 식으로 계속 발전을 해왔는데, 분명 비즈니스적인 차원에서도 아트에서도 벽을 만나게 될 거 같아요. 그러면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미디어가 뭐고, 뭘 해야 소통이 되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하죠. 사실 우리도 고민을 많이 하고는 있는데. 결국은 사회적인 시스템을 떼 놓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소통이 어렵다는 것은, 메시지 전송 속도가 많이 느려서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요 이젠.

Q. 우리가 모바일 환경에서 살고 있는데, 사실 그 환경에서 우리가 뭘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모바일 아트에 대한 얘기를 하기 전에 미디어아트들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를 들어본 이유가, 결국은 모바일이라는 미디어가 우리에게 뭘 주느냐, 이거를 얘기해 보려고 한 거거든요. 예술을 한다는 것이 ‘예술을 위한 예술’일수도 있고 ‘사람을 위한 예술’일 수 있는데. 지금까지 모바일 아트 작업들을 죽 해 오셨잖아요. 모바일이라는 미디어를 사용하는 우리의 관심사 또한 굉장히 많잖아요. 예를 들면, 사람들이 정부로부터 감시받고 있다는 생각에서 카카오톡 메신저에서 ‘망명한다’ 던지,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사람들의 이런 경험들을 소스로 해서 작업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쨌든 작가 분들도 하나의 개인이고 사람이니까, 이런 자신의 느낌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각자 모바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김 : 스마트 폰을 도구로 보는 작은 관점에서 볼 수도 있겠지만, 모바일은 결국 그거인 것 같아요. 옛날부터 인터넷은 계속 가능했잖아요.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장비가 되면서 모바일 혁명이 됐다고 하잖아요. 결국은 인터넷을 접근하는 게 되게 힘들고 그만큼 정보량이 많이 없었는데, 이게 생김으로 인해서 우리의 시간을 잡아먹는 거죠. 시간 개념으로 봐야 하는 거죠. 우리가 인터넷에 접속하는 시간과 방법의 변화가 바로 모바일 인거죠. 그런 관점에서 보면 모바일 아트가 정보가 뜨는 것뿐만이 아니고.

윤: 휴대폰뿐만이 아니라, 정보들을 담고 있고, 전달하는 그런 것들까지 다 포함이 된 거죠. 결국은 사회망 자체가 링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 전체의 링크구조들을 봐야할 것 같고, 지금은 모바일 아트 자체가 굉장히 말단의 어떤 휴대용 단말기로만 생각한다는 게. 그래서 사람들이 ‘내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구나.’ 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내가 어디 있든 누구랑 통화할 수 있고, 내가 미국에 있어도 당장 한국에 있는 친구랑 통화할 수 있고 예전과는 굉장히 달라졌어, 좋아졌어 라고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건 단순히 착각일수가 있는 거죠. 어쨌든 링크 되어 있는 시스템이나 이런 것들을 포괄적으로 생각해야할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카카오톡을 떠나고,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도 결국 단순히 말단에 있는 얘기 뿐 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또는 숨어 있는 우리가 알고 있었지만 그 링크를 연결해주는 망 자체, 네트워크 자체를 사람들이 인식해가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을 생각해보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Q. 모바일 아트 작업을 하시면서 생각보다 잘 안 된다 싶은 것이 있다면?

김 : 일단 관객과 소통이 잘 안되고요.

윤 : (웃음) 오히려?

- 아, 오히려 소통이 더 어렵나요?

김 : 왜냐하면 소통이 안 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로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데 있어서 예전보다 소프트웨어 개발이 쉬워진 것은 있어요. 왜냐하면 애플리케이션을 많이 제공 받으면, 애플이든 구글이든,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할 거 아니에요. 문제는 그 앱 배포를 하는데 있어서 그 정책이 있거든요, 그 정책을 따라야지만 배포를 할 수가 있어요.

단순히 어떤 스마트 폰을 쓰느냐가 어떤 감옥에 들어 가느냐와 똑같은 얘기가 된 거에요, 카톡도 마찬가지로... 다시 첫 번째 얘기로 돌아오면 개발하는데 있어서 그걸 사람들한테 많이 배포하고 싶어도, 제가 개발자 계정이 있거든요. 1년에 십 만 원 정도의 등록비를 못 내면, 그 앱을 내려야 되요. 
처음에 몇 번해서 사람들이 좀 다운 받고, 그게 돈을 못 내면 돈을 내려야 하는 거죠. 그리고 현실적으로, 아무리 이 앱을 다운 받으면 좋다, 어떻다 얘기를 해도 이게 홍보가 안 되죠. 미술관에서 몇 번 재미로 해보지, 집에서 누가 이거를 해볼까요?

심지어 앱스토어에는 예술이라는 카테고리가 없어요. 예술을 애플 자체에서도 인정을 안 하는 것도 좀 웃기고. 그런 소통이 안 되는 어려움이 좀 있구요. 제가 첫 작업으로 한 거는 커스터마이징 작업, 증강현실 앱이었는데, 두 번째 앱은 트위터를 가지고 앱을 만든 거 였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이건 따로 설치할 필요가 없이 트위터에 올리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참여가 되도록 하는 그런 앱이었는데, 이것도 사용자의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거든요.

비단 기술의 문제가 아니고요, 서비스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서비스를 개발을 하면, 예를 들어서 우리가 뭔가를 만들었는데 그게 페이스북이랑 기능이 같고, 심지어 페이스 북보다 쉽게 만들었다고 해도 페이스북처럼 사람들 간의 소통이 잘 되기는 힘들거든요. 그런 어떤 큰 서비스도 그렇게 되기 힘든데 어떤 예술가가 만든 작은 것들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기가 쉽지 않죠. 저는 처음에 제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었을 때, 작품들을 아카이브 형태로 정리를 안했거든요. 왜냐면 원본이 항상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게 개념만 남고, 사진이나 그런 것만 남고 실체는 없어지는 현상이 생기더라고요. 어떤 작업을 했냐, 그러면 소프트웨어가 있으니까 그것을 보여주면 소통이 잘 되야 맞는거잖아요. 실체를 보면, 아! 하고 바로 이해가 되야 하는데... 미술계에서도 그렇게 이해가 안되고 사진, 영상, 글을 보여줘야만 ‘아 이런 작업을 했구나.’ 하는. 반대 경향이 계속해서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이쪽에 있으면 당연히 “뭐 했니?” 그러면 자기가 개발한 사이트 주소를 보여주거나 실체를 보고서 판단을 하는데, 여기서는 반대로 이미지너리를 보고 실체를 추측해서 어떤 작업을 했는지를 아는 역설적인 상황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모바일이라는 것이 기술은 쉬운데, 사실 미술계나 미술적인 문법으로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변환이 되어야 하는거에요.

거기서 다시 어떤 커뮤니케이션 로스(LOSS)라던가 그런 게 있고, 그래서 시도를 했다고는 하지만 이걸 하면 할수록 '어떤 걸 했다'라는 것이 중요하지, 작품이 잘 돌아갔는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는 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대중예술을 지향을 하지만, 지향할 수 있는 좋은 기술이지만, 환경적인 요소에서 볼 때 오히려 소통의 길이 막혀 있게 되는 상황을 꽤 여러 번 겪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갈 바에는 어떤 기술을 이용해서 퍼트리는 것 자체보다는 이 기술을 가지고 있는 속성이나 사람들의 어떤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바뀌어가고 있는지를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자, 이런 생각으로 바뀌어가고 있어요. 그래서 모바일아트라기 보다는,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이 바뀌고 소통하는지 주목하게 되었어요.
카카오톡 작품을 예전에 했었는데, 위아래로 메시지가 흐르고, 사람들이 그것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작업 했었는데. 그 작업은... 우리가 어떤 메시지를 보내면 당연히 어딘가 서버를 통했으니 서버에 메시지가 남을 거고, 내 폰에서 지워도 다른 곳엔 남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거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기억과 기록에 관한 부분에 초점을 맞췄거든요. 싸울 때도 카톡이나 이런 걸 증거로 보이잖아요. 또 네이트 판 같은 곳 보면 카톡 캡쳐 이미지를 올려서 상담을 해요. 연애 상담을 할 때도 그냥 글을 푸는 게 아니라 캡처를 통해서 보여주면서 ‘누가 잘못했니?’ 이렇게 보여 주는 거에요.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하고, 너무 쉽게 커뮤니케이션이 되지만, 또 너무 쉽게 증거자료가 되기 때문에, 누가 그걸 볼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에서 작업을 했었는데요. 제가 카톡 망명 사태를 보면서... 그때 ‘관’을 생각하면서 짠 것도 있거든요. 내가 죽어도 나의 데이터는 남아있으니까요.

그런 부분을 기술적인 문제로 암호화를 하냐, 안하냐는 중요한 거 같지 않아요. 그게 한국의 공권력으로 인해서 함부로 볼 수 있는 제도가 문제이지 기술적의 문제는 아닌 거 같거든요. 옛날의 경찰의 수사방식과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잖아요. 세월호만 보더라도... 단순히 주고받은 메시지였지만 그 시간대가 수사에 큰 영향을 주고...
우리의 연애에도 영향을 주지만 사회적으로 큰 사건에도 영향을 주는 모바일 환경으로 바뀐 게 옛날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어떻게 보면 감시사회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감시사회가 아닌 그것에 대해서 심리적으로 받는 압박감이 더 큰 것 같아요. 처음에는 개인의 문제에서 커뮤니케이션이 발전을 했다가 개인의 문제에 따른 사회적인 문제가 되니까. 그런 것들이 바뀌어가는 게 모바일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구요.

윤 : 모바일 디바이스 자체 말단의 단말기만 가지고 본다면 굉장히 어려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모바일은 극도로 개인적인 공간이거든요. 근데 예술이라는 게 어떤 공론화가 될 수 있는 그런 주제들을 다루는, 대중과 공감 한다고 하는 부분에서 이미 문제가 생겨 버리는 거죠. 같이 공감을 해야 하는데, 극도로 제한적이고 나만 볼 수 있는, 은밀한 것들이 많잖아요. 내가 보는 생각과 느낌들을 다른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굉장히 힘들 것이 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가 원하는 것만 취하는 것이에요. 뉴스를 보더라도 내 정치적 성향이 좌인지 우인지, 내가 보고 싶은 매체의 뉴스만 본다는 것이죠.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죠. 자기만의 은밀한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이런 공간에 작업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이 들어요. 여기다 앱을 만들어서 하면 소통할 수 있겠구나 하는, 'playful' 하고 즐거운 오락처럼 할 수 있는 것들은 급속도로 형성할 수 있는 이유가, 코인을 주고받고 하는, 그 정도의 단순한 것들은 충분히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하기 쉬운데, 예술이라고 하는 단순한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아니다보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이뤄지다보니까, 힘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제일 말단에 있는 미디어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는 자체가...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한다고 하기 보다는 내 개인의 것을 찾아가려고 하다보니까, 굉장히 힘들다는 것이죠.

김 :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보면 좋은 도구인 것 같고요. 사용자 경험을 추구하는 작가한테는.

윤 : 그렇죠. 그게 개인화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 뭔가가 된다면 젤 좋은 매체이긴 하죠. 개인을 위한. 그래서 아마존이나 이런 데에서도 그런 개인화된 서비스들을 하잖아요. 나의 성향을 파악해서 추천을 해주고. 그런 식으로 되다보니까 작가가 하려는 어떤 공론화된 작업을 하려는 것 보다는 맞춤형의 어떤, 서비스처럼 작업을 맞춰가야 한다는 제한을 둘 수 밖에 없다는. 그래서 굉장히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는, 가볍고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앱을 만들고 배포해서는 뭐 잠깐 즐겁게 놀 수 있지 않겠냐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걸 이용하는 사람을 먼저 이해한다면 극도로 어려울 거예요. 매체 자체는 굉장히 쉽거든요.


컨텐츠로서의 예술 : 모바일 아트를 위한 플랫폼

Q. 그러면 미디어아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미디어아트가 전시가 이뤄지는 미술관에 가고, 회화 전시를 보고 싶은 사람들은 회화 전시를 보러 가잖아요. 자기 개인적 취향에 따라서 가는 것처럼. 예술들을 다 모아놓은 어떤 하나의 플랫폼이 있어서 스마트 폰 이용자가 그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취향대로 볼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요? 예술을 유통하는 관점에서 본다면요, 윤작가님이 얘기 하셨다시피 관심이 있으면 들어가서 보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 그게 제가 관심이 많이 있고 생각했던 부분인데, ‘재매개’라고 하는 거잖아요, 쉽게 말하면 똑같은 
컨텐츠인데, IT 쪽에서는 원 소스 멀티유저라고 하고, N스크린 대응한다고 하고, 같은 컨텐츠인데 컨테이너에 따라 맞춤형에 바뀌어서 나오는 것이거든요. 그게 만약 영화라고 본다면 오히려 쉬운 편 인거 같아요. 해상도 문제와 사운드 문제를 감수하고서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데, 말 그대로 이미 정해져있는 방식의 것들은 플랫폼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거든요, 분명히 영화도 IPTV 나오고 그로 인해서 스마트 폰으로도 볼 수 있고. 그런 환경이 구축이 되는데...

예술 쪽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장르가 분명 있을 거 같고요. 그리고 그것을 단순히 홍보용으로만 쓰고, 알리기만 하고 실제 작품은 가서 보도록 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고, 완전 소프트웨어가 아닌 이상 원본과 같을 수는 없거든요, 어떤 작업 같은 경우에는 맞물려도 돌아가야 할 수도 있고, 복잡한 게 갖춰져야 의미가 있는 작품경우에는 플랫폼이라는 어떤 단일한 구조에 구겨 넣을 수가 없을 거예요. 
분명이 모든 것들이 수용될 수 있는 플랫폼은 아닐 것이고, 그중에서, 그나마 대중에게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일러스트나 팝아트나, 약간 센서를 이용해서 그게 어떤 반대의 접근 방식으로 가게 되면. 이런 디바이스가 있고 이런 기능이 있는데, 여기에 맞는 예술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서비스시장이 형성되면, 음악을 몇 백 원에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것처럼 그런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죠. 아니면 오리지널 페인팅을 옥션처럼 판매만 해주는 개념으로 오픈 마켓 개념으로 할 수도 있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게 없고 외국도 아직 활성화 되어있진 않죠.

사실, 정말 개념적으로 작업을 얘기하고 있을 때는 어떤 규격에 맞추기가 너무 힘들거든요. 그래서 분명히 전시를 하게 되면 나뉠 것이고, 여기 조그만 것에서 사고팔고 하는 부분에 있어서, 옛날에 어떤 기업에서 하려고 했던 게, 대중 예술 옥션을 하려고 했는데, 그 당시 결론으로는 아직 시장이 될 시기가 아니어서 사업을 접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거를 단순히 인테리어 개념이나 이런 개념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어느 플랫폼에 있다면, 그걸 사람들이 향유하는 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 캐릭터를 사고 그런 거는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의 느낌이었다면, 예술이 그런 식으로 집에 있는 스마트TV 에 들어갈 수도 있을 거고, IoT 라고해서 냉장고에 화면이 달려 있으면 냉장고에서 작품이 나올 수도 있고, 기술적으로는 생각 할 수 있는 게 많은데... 사람들이 아직은 정서적으로 마음의 안정을 느끼고 싶어 하는 거 같아요. 예술을 궁극적으로 갈구 하는 이유가.. 음악은 장소 특성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가능한데 작품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은 페인팅을 걸어 놓고 멍하니 보고 있는 것을 좋아하지, 여기 작은 화면에서 마음의 안정을 느끼기는 쉽지 않은 상태인거 같아요.

- 만약 특정한 가상 플랫폼에서 예술작품을 모아 놓고 볼 수 있게 되면, 좀 전에 얘기하신 것처럼 한번 쓱 보고 소비되는 예술이 아닌 컨텐츠가 될 것 같다는 거죠?

윤: 그렇죠. 사람들이 이 디바이스를 사용하는 패턴을 보면 뻔 하잖아요? 뭔가를 길게 감상할 시간도 없구요, 시간을 할애하지도 않아요. 물론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면 길게 봐요. 사람들이 아무것도 관심이 없고 스마트 디바이스에만 빠져 있거든요? 근데 자기 좋아하는 드라마를 본다던지 게임을 하면서... 왔다 갔다 하면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죠. 그런데 제가 디지털 박물관을 갔는데, 올라오는 내용들을 실제 눈으로 보는 거랑 사람들을 관찰하는 거랑 차이가 있더라고요. 내가 작가로서, 그냥 이런 반응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랑 실제 현장에서 보는 거랑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그래서 섣불리 그런 경험을 할 거라고 생각하기가 힘든 것 같아요. 

많이 알수록 많이 보인다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서비스는 사람들에게 맞춰 주는 거고. 그래서 요즘 많이 얘기하는 게 고객 분석은 이미 됐고, 고객을 통찰해야한다는 거죠. 분석은 그냥 센싱에서 데이터를 모은 거잖아요. 그래서 경험을 통해 통찰을 해야 한다는 그런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걸 잘하는 사람이 스티브잡스다. 뭐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좀 이런 미디어 아트 쪽은 아직 그런 부분에 있어서 초보 단계인거 같다는 생각인거 같고. 인터랙션 디자인을 한다고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매순간 바뀌잖아요. 근데 미디어 아트에서는 처음에 전시를 하고 나면 끝나요. 전시 끝날 때까지, 그럼 맞춤형도 아니고 어떤 공간에 던져 놓는 건데, 그게 진정한 사용자 경험이냐, 그런 생각도 들더라구요. 쉽게 말하면 화장실가면 센서를 통해 자동으로 물이 나오잖아요. 그게 저는 엄청 불편하거든요. 그런 식인 거 같아요. 편하지 않아요, 불편해요.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인터랙션 작품들을 보면...

윤 :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는 거죠. “제발 눌러주세요. 안 누르면 내 꺼가 안변하잖아요.” 이거랑 똑같은 거잖아요. (일동웃음)

- 제가 대구 사진 비엔날레에 갔더니, 이런 작품이 있더라고요. 거울을 일렬로 쫙 붙여놓고, 그 거울 에 하나하나씩 입김을 불면 사진이 나와요. 아마도 거울에 뭔가 화학적인 처리가 되어 있겠죠. 근데 보통 비엔날레 같은 걸 하면 고등학생들이 반 단위로 와서 많이 다녀가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고등학생들이 그 거울을 손으로 만져서 그 화학 처리된 게 지워졌나 봐요. 입김을 불어도 사진이 안 나타나는 거죠.

윤 : 와, 되게 인터랙티브한데? (웃음) 점점 사라지는...

- 그래서 거울이 8개 있으면 1개만 사진이 보이더라고요. 작가가 의도한 바는 전달되지 못하고.

김 : 그래서 미디어아트 작품이 고장이 잘 나잖아요. 미술관에서도 구매를 꺼리고, 구매 방식도 어렵고, 그러니까 판매가 돼야 사실 이 분야가 활성화 되잖아요.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해야 소통도 되는 것인데, 미술관에서는 정확하게 메뉴얼화 할 수 있는 것을 원하죠. 근데 미디어아트는 작품 개념상 사람들이 데이터를 올리고 바뀌고, 계속 변해져야 하잖아요.

윤 : 미디어아트 작가들은 그게 안 되잖아요. 근데 소위 팔리는 미디어아트 작가들은 잘 팔아.(웃음)

김: 우리가 못 파는 건가?(웃음)

윤 : 그 사람들은 셋탑박스를 만들어도 잘 팔아. (웃음)

김 : 하드웨어까지 풀로 해서 미디어까지 딱 떨어뜨려서 팔지 않는 이상, 미디어 아트 작품은 잘 안 팔리거든요. 그렇게 하면 IT 쪽에서는 정해진 'product'라는 개념이 없거든요. 딱 고정된 것이 아니고, 불변하는 것이 서비스 원칙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거를 미술에 적용하면 팔수도 없는 게 되는 거고, 계속 살아있고, 작가가 죽어도 남아있는 미디어아트는 작품이 계속 귀속되어 있잖아요. 작가에게... 그렇게 사회가 변하고 있는데, 미술계에서는 그런 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죠.

Q. 미디어 아트 작품 자체가 팔기 어려운 작품인데. 근데 그걸 의식을 하고 작업을 하진 않지 않아요?

윤 : 아예 안 팔리니까 의식을 안 하죠.

김 : 미디어아트는 비디오나 그런 게 아니면 구매를 잘 하지 않는 거 같아요.

- 아 그렇군요.

김 :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수입을 얻고 있죠 다들.

우리의 일상으로 깊숙하게 들어온 모바일,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새로운 ‘예술 체험’이 가능해졌다. 내 손안에 들어온 작은 컴퓨터가 된 스마트폰, 그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온 수많은 센서들은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새로운 ‘물감’이 되었다. 그러나 그 물감들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작품들을 관람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거리이다. 작가들에 따라서는 모바일이라는 미디어가 ‘소통’하기가 더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다. 특히 모바일의 ‘1인 미디어’라는 개인적 특성은 관람객들의 개별적인 감성에 더 밀착하여 다가갈 수 있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미디어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쉽게 외면 받거나, 예술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예술가에게는 ‘미디어’라는 것 이전에,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이겠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미디어 아티스트들은 ‘구조화’ 작업을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메시지를 관람객과 주고받도록 하기 위한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 속으로 관람객들을 포함시킨다. 전기 회로를 그리거나, 알고리즘을 짜거나, 밤을 새워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관람객들은 그들이 만든 구조 속에 들어갈 수도, 들어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또는, 여러 번을 반복해서 시도해도 예술적 감흥을 전혀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미디어 아티스트들은 외로운 ‘시간여행자’이다. 모든 것이 초단위로 소비되는 이 시대에, ‘예술’이라는 그 오래된 단어를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자 말이다.(인터뷰에 응해주신 김태윤, 윤지현, 전지윤 작가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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