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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큐레이터, 그리고 디렉터

2018 50호 /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인터뷰


김홍희 전 시립미술관 관장은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한국미술 현장의 다양한 지점에서 활동했다. 플럭서스를 대한민국에 알린 연구자로서,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등 기획자, 대안공간 쌈지의 디렉터, 경기도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기관장으로서. 명실상부 대부분 미술계 현장에 발을 들여놓았던 폭넓은 경험을 가진 몇 안 되는 미술계 인사다. 그런 그가 어려운 시간을 내어 그간의 행보와 동시대 미술에 대한 관점과 전망, 과제 등에 대해 소견을 밝혔다. 

다음은 대안공간 보안여관에서 열린 김 관장과의 일문일답이다.

황석권(이하 ‘Q’)
바쁜 일정이 있으신데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시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 짝수해의 가을이기도 하니 올해 열린 비엔날레에 대한 간략한 리뷰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할까요?

김홍희(이하 ‘A’)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그리고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를 다녀왔어요. 제가 재직했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미디어시티서울은 미디어 비엔날레로서의 차별화가 아쉬웠다는 생각입니다. 광주비엔날레는 규모나 내용 등 외연에서 드러나는 양상이 매우 컸어요. 매우 용감한 시도였다고 봅니다. 또한 펀드레이징도 잘 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무엇보다  비엔날레관의 전시는 탈식민주의 주제가 강하게 드러나는 깊이 있는 전시 같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5부 아카이브 전시는 1-4관의 전시 흐름을 끊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지금 왜 이 시점에 아카아브 전시를 하는지 기획의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처음 사이트화한 ACC 전시는 주제의식이 분명치 않고 작품을 나열하는 인상을 받았어요. 다만 북한미술이 소개된 문범강 교수가 기획한 전시는 대작 위주로 과거의 한국화나 동양화의 전시 형식을 벗어난 점이 돋보였습니다. 공간 연출도 모던했구요. 또한 북한미술에 대한 목마름을 추겨주는 효과가 있었고 지금 시점에서 시시적절하지 않았나 싶어요. 

팔레 드 도쿄 전시는 전시장소를 잘 활용하고 현대미술의 일면을 잘 보였고 작품 선정도 좋았어요. 국군병원 전시는 호평도 있었지만, 저는 전시공간이 너무 감상적으로 선택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왜 그렇게 위험하고 불편한 공간 환경을 꼭 사용해야했을까? 좀 친절한 전시 방식이면 좋지 않았을까? 5.18의 기억을 다른 방식으로 환기시키는 것도 가능치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국군병원 사이트에서는 마이클 넬슨의 <거울의 울림>을 전시한 부속 교회 전시로 충분했을 것 같구요. 

부산비엔날레가 열린 부산현대미술관의 전시는 주제면에서 밀도를 보였지만 예산부족 탓이겠지만 규모가 너무 작지 않았나 싶어요. 구한국은행 전시 가운데 1층 설치보다는 3층 영상작품이 좋았던 것 같구요. 

Q: 수많은 비엔날레가 열렸던 10월이었습니다. 진부한 이야기이겠지만 이를 두고 다양함을 제시할 수 있다는 긍정론과 과잉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양립합니다. 이에 대한 관장님의 의견은 어떠한지요?
A: 그렇죠. 비엔날레와 관련해 긍정, 부정 시각이 분명히 있죠. 비엔날레가 서구중심적이고 권력집단의 먹이사슬로 묶여 있다는 부정적인 비판이 있지요. 그렇지만 비엔날레는 미술관이나 상업 화랑이 못하는 대안적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수 있어요. 1990년대 출범한 아시아 지역의 신생비엔날레들은 상하이, 싱가포르, 광주 등의 도시를 도시건축과 함께 새로운 예술적 스팟으로 부상시키는데 역할이 컸죠. 서구하고 다른 아시아적 정체성을 담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이를 통해 탈식민주의적인 입장을 담보하고 있다는 의미를 구축했어요. 이것이 아시아의 지리정치학적  입장이 반영된 미술 대형미술행사의 의미일 것입니다. 

한국에 비엔날레가 많지만 사이트가 역사성과 경쟁력있는 곳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아요. 가령 광주비에날레는 5.18의 아픈 역사를 문화적으로 치유한다는 의미 때문에 애초부터 성공이 보장되지 않았나 싶어요. 비엔날레 개최와 더불어 제기되는 비판은 개최 당해마다 성공이냐 실패냐로 이야기되지만, 그보다는 10년, 20년 역사를 쌓아가며 해당 지역과 교감하고 동시에 세계적 인지도 구축하는 더 중요하다고 봐요. 광주 경우 비엔날레를 통해 국제도시로 받돋음했을 뿐 아니라, 시민들의 현대미술에 대한 의식이나 감각이 크게 진일보한 같아 상당히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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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1, 1993년 서울플럭서스 페스티벌


Q: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나눠보겠습니다. 관장님께서는 페미니즘 미술과 백남준으로 대표되는 플럭서스 연구를 한국에 최초로 알리시기도 했습니다. 또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큐레이터, 앞서 언급하셨던 광주비엔날레 전시 총감독을 맡기도 하셨고요. 이와 더불어 대안공간 쌈지 디렉터와 서울시립미술관장을 역임하셨습니다. 동시대 한국미술현장에서 큰 진폭의 스펙트럼의 경험과 활동을 보이셨어요. 
A: 지난날을 돌아보면 제가 한 일은 플럭서스, 비디오아트, 페미니즘 미술과 같은 주변부 장르나 담론을 중심으로 이동시키는데 작으나마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쌈지스페이스와 같은 대안 공간 활동도 같은 맥락이었구요.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의도나 목표를 가졌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예술에 대해 공감하고자 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의견을 같이 미술인들을 알게 되고 그들과 함께 미술계 지형도를 변화시키는 일이 벌어진 것이죠.
 
결국 그러한 일종의 독립군 정신이 최근 공공미술관 수장을 맡아 기관의 체질을 변화시키고자 한 노력과 활동으로 이어진게 아닌가 싶어요. 복합주의, 또는 하이브리드(hybrid), 융복합(convergence) 개념에 다들 잘 아시겠지만, 지금은 장르나 사조의 구분, 나아가 젠더의 구분이 흐려지는 시대죠. 대중적 사진매체나 비디오가 미술영역에 들어오면서 미디어 아트가 활력을 받고... 1970년 대 등장한 퍼포먼스, 개념미술, 장소특정적 미술이 더 이상 실험적인 예술 활동이 아닌 보편적 장르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처럼 미술은 매체의 확장을 통해 자체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영역을 넓히고, 동시대 시대정신과 궤를 같이 합니다. 
 
Q: 개인적으로 변화의 양상이 관장님 때보다 지금이 더 느려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A: (웃음) 시대적 패러다임이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큰 틀에서는 유지되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미술계의 환경에서 대안 공간, 또는 청년문화의 양상이 크게 변한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의 대안운동은 제도에 대해 집단적 저항정신을 드러낸 것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집단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이고 또한 일시적 현상이 강한 것 같아요. 그 당시는 대안공간이 홍대나 인사동과 같은 문화 특정적 지역에 모여 있었죠. 지금은 젠트리피케이션의 현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젊은 작가들이 점차 생존할 수 있는 외곽지대나 새로운 지역을 찾아 나서지요. 유동적, 유목민적 태도로 쉽게 이동하고 다른 곳으로 찾아 떠도는 모습이예요. 또 다른 특징은 과거 청년작가들은 비상업주의, 순수주의를 표방했지만, 요즘은 작가들은 마켓에 예민하고 상업주의를 회피하지 않아요. “굿즈”전이 일종의 신호탄이었죠.  

젊은 작가들과 기획자들은 정부나 외부 지원을 기대하기 보다는 경영마인드, 자가 운영시스템을 갖고 스스로 벌고 대응하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참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해요. 제 경우 쌈지스페이스에서의 모세 활동을 할 때와는 달리 9년간 국공립미술관 관장을 하다 보니 현장에 무뎌졌어요. 앞으로 새로운 작가를 주목하고 새로운 환경과 현상을 계속 주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Q: 한국 미술계 대표적 현장을 두루 거치셨던 경험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하신 분의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의 한국미술 전시 기획의 변화에 어떤 역할을 하셨다고 보시는지요?
A: 2000년대 사설 대안공간의 시대가 지나고 2010년대에 들어오면 미술관이나 재단 산하의 예산이나 규모가 큰 레지던시가 새로운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쌈지스페이스 문을 닫을 시점에 한정된 예산으로 변화와 혁신을 만들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경기도미술관 산하 경기 창작센터를 운영하면서 안정된 예산으로 할 일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공공미술관장으로 일하기 이전에 저는 독립큐레이터로서 비엔날레 관련 활동을 해왔습니다.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인포아트>(1995), 광주비엔날레 본 전시 한국/호주관 커미셔너(2000),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2003), 광주비엔날레 총감독(2006) 등을 맡으며 소중한 경험을 쌓으며 국내외 미술계의 인지도를 넓혔습니다. 큐레이터로서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었죠. 전 늙마에 공부하고 화단에 입문하여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런 만큼 젊은 사람들 보다 인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포용력이 컸던 것 같아요. 나이 값이라 할까요? 공공미술관에 재직할 때도 공무원들과 싸우며 일하기보다는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화합과 상생구조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협업의 묘를 살리는 것이 큐레이터나 디렉터의 미덕이라는 생각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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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2, 1993년 플럭서스페스티벌. 제프리 헨드릭스의 5중주 퍼포먼스 장면


Q: 그렇게 일하시면서 보는 시대변화와 전시 기획 주제의 변화에 대해 매체와 정치적 지형 변화와 연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제 석박사 학위 논문 주제가 비디오와 페미니즘이잖아요? 두  분야 모두 새로운 사조이자 정치적 예술로 볼 수 있는 측면들이 있어요. 그래 그런지 연구와 현장 활동을 통해 정체성 문제에 많이 천착하게 되었어요.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여성, 아시아 여성 큐레이터로서 어떻게 큐레토리얼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인가 고심하구요. 페미니즘과 관련 전시나 논고도 한국여성, 아시아 여성 이산작가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명할 것인가에 집중되었어요.

국내 여성작가들에 대한 전시였던 <여성 그 다름과 힘전>(1994), <팥쥐들의 행진전>(1999)에 이어 동아시아 페미니즘이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에 관한 전시나 글을 발표하면서 이러한 생각이 좀 더 구체화되었어요. 저는 큐레이터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미학적 전시보다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고 전시를 논쟁과 해석의 장으로 파악하는 이슈파이팅하는 전시를 선호합니다.

Q: 경기도와 서울의 국공립미술관 관장을 역임하셨으니 큐레이터십과 디렉터십에 대한 차이와 구별도 여쭙겠습니다. 
A: 자명한 얘기이지만 큐레이터 전시를 만드는 사람이고 디렉터는 미술관을 운영하는 사람이지요. 디렉터는 큐레이터가 전시를 잘 만들도록 서포트해야 하는데, 본인이 전문성이 부족하면 리드가 잘 되겠어요? 동시에 디렉터에게는 조직운영에 대한 노하우가 필요해요. 큐레이터 출신 관장직을 수행하면서 행정과 운영 면에서 제가 부족한 점을 많이 느꼈어요. 그러나 전 9년간의 경험과 노력으로 많이 극복했다고 생각합니다. 
 
Q: 미술 관련 기관이 동시대 한국현대미술 현장에 대한 기록 구축사업을 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 방향은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요? 
A: 동의합니다. 기록, 아카이브 구축 사업은 개인이 하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역부족이라고 봐요. 미술관이나 재단의 인력과 예산이라야 가능하지요. 아카이브 구축작업은 연구에 기초하여 신중하게 체계적으로 접근해야죠. 미술관 전시나 수집 정책도 연구조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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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3, 여성 그 다름과 힘전, 이불 퍼포먼스, 1994

 
Q: 앞으로 한국미술의 향방에 대한 질문 몇 가지 던져봅니다. 현재 한국미술계, 미술현장에서 당장 시급하게 대응하거나 준비해야할 과제를 꼽는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A: 세계화 현상, 글러벌리즘이 회자 된지도 10년이 넘었어요. 역설적이게도 세계화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적 정체성을 어떻게 찾느냐 입니다. 한국 문화의 정체성은 전통에 기반 하면서도 편협한 지역주의를 벗어나는 세계성, 즉 한국전통의 “뿌리”와 미래적 “길” 사이의 함수관계 속에서 찾아져야 합니다. 

한국성과 서구성이 절묘하게 결합된 백남준의 예술이나 혼성적 감성으로 세계적 공감대를 얻고 있는 ‘한류’가 그 예증이듯이, 한국미술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는 다른 역동적, 미래적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국화단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한국적 특수성과 차이를 발굴하는 미학적 노력과 큐레토리얼 실천으로 한국미술의 다름과 힘을 가시화하고, 이러한 노력으로 세계의 주목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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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4, 박이소, 2010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1위~10위 혼합재료, 2003       
이 작품은 작은 공간에 세계 10대 고층 건물 미니어쳐를 진열해 놓은 이 작품은 현대 사회의 모순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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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5, 김홍희 관장 포트레이트


 

Q: 말씀을 들으면서 모순적인 의문이 듭니다. 작가에게 국가주의는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작가나 기획자, 예술가에게 국적은 중요한 것인가라는 생각입니다. 
A: 국가 이기주의나 전통주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는 국적을 초월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작가나 큐레이터에게는 국적이 있지만 창작활동이나 큐레이터십에는 국적이 없다는 것이죠. 작가들에게는 지금/여기에서 생성되는  한국성, 아시아성에 대한 탐구가 필요합니다. 두 얼굴의 아시아, 야누스의 얼굴을 하는 현대아시아의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가지는 게 중요하죠. 백남준 이후 한국적 모티프를 세계화시키고 국제적 공감대를 얻는 한국 작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기대가 됩니다. 다만 이국주의나 오리엔탈리즘으로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Q: 최근 전 세계적으로 여성과 젠더 관련 이슈의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죠. 여성큐레이터, 비평의 문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지요?
A: 여권이 많이 신장됐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폐지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냐라는 주장이 있는데 가부장 사회에서는 페미니즘은 존속될 수밖에 없어요. 아직까지 여성혐오증이나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멈추지 않으니까요. 미술계만 보더라도 출산과 육아가 여성의 창작 활동을 중단시키는 현실은 변하지 않고 있잖아요. 개인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여건 변화가 시급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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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6, 박영숙의 미친년 시리즈, 팥쥐들의 행진 전, 한가람미술관,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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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7, 박영숙의 미친년 시리즈, 팥쥐들의 행진 전, 한가람미술관,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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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8, 황인기, 28m의 대형 벽화,  6만개의 실리콘과 13만개의 아크릴 거울 파편 ,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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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9, 송동, 열풍변주곡, 2006

 
Q:《미술과 담론》웹진 50호의 공통질문입니다. 요즘 회자되는 4차 산업혁명은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라는 지식과 광대역의 네트워크가 미술에 미칠 영향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예술은 인간의 머리와 손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4차 산업혁명의 위력과 영향에 함몰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예술제도는 4차 산업혁명과 호흡을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빅데이터는 개인의 호불호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사람들의 행태와 미래를 예측하고 인간에게 의미있는 것을 제시해주는 만큼, 미술 관련 기관은 빅데이터를 사용하여 관객 개개인의 경험과 취향을 근간으로 하는 고객지향적 정책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미술품 수집, 복원, 연구, 전시 연출, 온라인 관람객을 위한 D/B 뿐 아니라 융복합 다원예술 프로그램 개발에도 소설미디어를 활용하여 정보 시대의 요구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Q: 끝으로 덧붙이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A: 작가들이나 큐레이터들이 정보력을 갖췄으면 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과 무관하게 스튜디오에서 자기 세계만 몰입해서는 작가적 출구를 찾기가 어렵지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의 탄생이 전자산업이 미래적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정보력에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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