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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에서 비트로, 소유에서 공유로의 미학

 

 

 

조관용(미술과 담론 대표)

자료 조사 이봉욱(미술과 담론 수석기자)

전지현(미술과 담론 홍보기자)

 

 

 

숲에 들어온 순간 우리에게는 나무만 보이고 숲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체험하고 있는 우리의 심리적인 상황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4차 산업 혁명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어디쯤에 와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우리가 4차 산업 혁명과 관련한 토론들을 종종 접하더라도 그것이 3차 산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4차 산업과 관련된 이야기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3차 산업도 4차 산업과 마찬가지로 컴퓨터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탈물질적인 생태계로 구성되어 있기에 우리는 3차 산업으로 이루어진 현재의 일상의 삶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유추하거나 또는 그와 비슷한 것으로 상상하는지도 모른다. 마치 스마트 폰이 출시되기 직전에 우리가 스마트 폰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스마트 폰을 사용하여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과 유사한지도 모른다.

4차 산업 혁명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세계경제포럼 회장인 클라우드 슈밥이 주창한 2016년 세계경제포럼회의에서 이다. 4차 산업혁명은 클라우드 슈밥에 의하면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5G들을 통해 3차 산업혁명의 사고방식으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가치 생산의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세계를 의미한다.

우리의 일상의 삶은 4차 산업혁명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그러한 세계를 예측해 볼 수 있지만,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측한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될 것이다. 지금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세미나와 토론은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인해 우리의 삶의 전후가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본다면 그러한 예측은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거나, 아니면 전혀 상상하지 못한 세계가 될지도 모른다.

 

noname01.jpg

 

(http://youtu.be/kpW9JcWxKq0)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적인 변화와 함께 우리의 일상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러한 변화는 시각적인 변화뿐만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와 우리의 인식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로버트 타섹은 2015년의 저서증발:모바일 경제를 관통하는 핵심원리에서 누가 짐작이나 했는가? 그 많던 택시가 하루아침에 증발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맞이하게 될 세계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아톰에서 비트로

 

제일 먼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있어서 우리가 인식하는 최소 단위는 아톰이 아니라 비트이다. 우리가 일상의 삶을 통해 인식하는 모든 물질 단위의 기준은 원자로 구성된 세상이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우리가 인식하게 될 최소의 단위는 원자가 아니라 비트의 단위이다. 우리의 일상의 삶을 원자가 아니라 비트로 인식하게 된다면 우리의 일상의 삶은 어떠할까?

우리가 처음으로 비트가 최소 단위인 삶의 세계를 상상한 것은 영화 <매트릭스>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비트가 최소단위인 삶의 세계와 원자가 최소 단위인 삶의 세계가 교차하며, 원자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비트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차이를 상상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매트릭스>는 먼 미래의 일이며, 우리의 삶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기에 영화 <매트릭스>를 통해 우리의 삶에 충격을 받는 정도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 <매트릭스>가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구현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이와는 전혀 다르다. 우리의 삶은 스마트 폰의 보급과 같이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비탈길을 서서히 오르듯이 원자에서 비트적인 삶의 세계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이 비트적인 삶의 세계로 비약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로버트 타섹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고체 상태에서 기체 상태로 비약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비약은 단순히 기술발전을 통한 경제와 사회의 성장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 로버트 타섹이 예고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의식 구조의 전환을 통한 우리의 사회 전반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비약적인 삶의 변화는 로버트 타섹이 2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변화해 가는 사회 구조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로버트 타섹은 원자에서 비트의 세계로 전환되는 4차 산업혁명에서 사회 구조의 변화에 대해 먼저 4가지 부문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는 도시외곽 지역과 교외가 사라진다. 두 번째로는 병원 가는 일이 증발된다. 세 번째는 국가의 증발이다. 대기업의 증발이다. 그가 예측하고 있는 이야기는 마치 유토피아의 세계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게 되는 상상적인 세계와 같아 헛소리와 같이 들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예측하고 있는 세상은 2차 산업혁명에서 3차 산업혁명으로 전환되는 것과 같이 사회, 경제, 정보 문화들의 불편한 부분을 다소 개선하며, 발전하며, 확장해 가는 세계를 예측했을 것이다. 하지만 로버트 타섹이 이야기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2차 산업시대에서 3차 산업시대로 넘어가는 시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3차 산업시대에도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비트의 세상을 접하고 있다. 하지만 4차 산업 시대는 3차 산업시대에서 사회 전반에 걸쳐 일부분에 적용되는 것과는 달리 인간과 사물들이 모두 비트로 전환하여 작동할 수 있는 구조로의 전반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그러한 시대는 2차와 3차 산업혁명의 시대와는 달리 로버트 타섹이 예측하는 것처럼 사회 경제 부문의 활동을 위해 중앙으로 이동하는 것과는 달리 교외에서도 경제적인 활동이 가능함을 예고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단순하게 사회, 경제, 과학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은 원자의 세계에서 비트의 세계로의 전환, 즉 물질적인 세계에서 탈물질적인 세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러한 탈물질적인 세계는 고체에서 기체로 변환되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사회, 경제, 과학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과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이 도약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유에서 공유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물질과 탈물질화가 혼합되었던 세계가 아니라 순수하게 탈물질화로 환원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탈물질화의 세계는 원자의 시대와 같이 물질덩어리로 이루어져 사유하던 세계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개인들은 그러한 세계에서 모든 것을 단순화함으로써 미술에 있어서 미니멀리즘의 작가들의 태도나 종교에 있어서 무소유를 행하고자 하는 수행자의 모습처럼 보일 수 있다.

로버트 타섹은 4차 산업혁명의 사회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디지털 퍼스트 사회다. 행하고 말하고 듣고 보고 소유하는 것 가운데 오직 디지털 공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늘어난다. 개인 소유의 물건과 상품을 비롯해 실물을 손으로 직접만질 수 있던 전통 사회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를 탈물질 사회라 표현한다. 나는 소프트웨어 정의 사회라 부른다.1)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우리의 일상의 삶에 있어서 종교의 수행자와 같이 무소유적인 삶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은 로버트 타섹은 정보 전달 방식에 있어서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정보 전달은 산업 혁명의 발전과 함께 고체에서 액체로, 그리고 액체에서 기체로 진화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고체 상태에서 기체 상태로의 정보 진화는 로버트 타섹의 말을 빌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고체 상태일 때 정보는 실물에 삽입된다. 책이 대표적이다. 책에는 방대한 정보가 담긴다. 정보는 실물 종이에 묶여 있다. 인쇄된 정보를 책에서 분리하는 건 최근까지 불가능했다. 용기인 책과 콘텐츠인 정보는 분리 불가능한 한 단위였다. 인쇄뿐아니라 모든 미디어 산업이 이 고체 상태 정보에 바탕을 두었다. 1990년 상황이 변했다. 월드와이드웹이 등장한 것이다. 후기 구텐베르크 시대가 왔다. 정보는 컴퓨터 화면 속 소프트웨어가 되었다. 웹이 정보를 물리적 용기에서 해방시켰다. , 브로슈어, 신문이 웹에 무릎을 꿇었다. 가정과 사무실에 인터넷이 설치됐고 정보는 물처럼 전화선을 자유롭게 흘러 다니며 퍼져 나갔다. 여기서 스마트 폰이 등장한다. 정보가 고체에서 액체로 변한 뒤 또 다시 진보가 일어났다. 공기를 통해 모바일 기기로 접속할 수 있게 한 것, 곧 정보를 증발시킨 것이다. 이때 정보는 공기처럼 움직인다. 신속하고 자유로우며, 빠르게 진화한다. 기체 상태 정보는 계속 변한다. 고정된 실물 미디어에 매여 있을 때와는 정반대 방식으로 움직인다. 한 곳에 매여 있지 않고 수백만 명이 동시에 공유할 수 있다.2)

언제나 어디서나 공유할 수 있는 정보는 사물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필요할 때 빌려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의 발전을 가져온다. 그럼으로써 4차 산업 혁명의 시대는 책이든, 공구든, 또는 거주 공간이든 사용자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빌릴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의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4차 산업혁명은 이전의 산업혁명의 패러다임과는 사물은 소유가 아닌 공유를 통해 체험하는 것으로, 즉 사물을 대하는 인식이 전환됨을 의미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학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각 학문 간의 분야들이 서로 융합함으로써 하나로 연계되는 초연계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예술과 미학은 어떻게 그 기능을 유지할 수 있을까. 클라우드 슈밥은 기술이라고 불리던 예술은 우리에게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예술은 우리의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가치가 기술에 함몰되기 전에 이를 표현하고 비판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예술의 역할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상상하고 혁신을 이룰 수 있도록 인지적, 감정적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다.”3)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의 기술 발전을 통해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을 예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예술의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로버트 타섹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인간과 사물의 정보를 기체와 같은 정보로 환원하여 서로 공유함으로써 초연계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러한 초연계적인 사회는 사물인터넷이나 인공지능, 5G나 클라우드 컴퓨팅의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각 개인들이 체험하는 정보를 특정한 누군가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각 학문 간의 융합을 통해 모두가 공유함으로써 하나로 연결되는 초연계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4차 산업시대에는 각 학문 간의 융합을 통해 하나로 통합되는 초연계적인 사회를 의미한다. 즉 그러한 초연계적인 사회는 각 개인들이 서로 간의 생물학, 역사, 문화, 사회 등등의 차이들을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하나로 융합하고자 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한 시대에서 예술에 내재한 인문학적인 미학적인 감성은 예술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파수꾼으로서의 역할보다는 각 개인들이 사회, 역사, 정치, 문화, 세계사, 생물학, 의학 등등의 차이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차이점들을 인지하고 서로가 하나로 연계하고자 하는 이해력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지 모른다.

4차 산업시대에 예술의 개념은 각 개인들을 하나로 연계시키는 학문들 중의 한 부분에 불과할 뿐 예술이 각 학문들을 융합하여 초연계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파수꾼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4차 산업혁명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도래하게 될 초연계적인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모더니즘의 연장선상에서 유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 로버트 타섹, 증발-모바일 경제를 관통하는 핵심원리, 김익현 옮김, 커뮤니케이션 북스, 2019. pp.3-4.

2) Ibid., pp.7-11. 

3) 클라우드 슈밥,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더 넥스트, 새로운 현재, 2018, pp.249-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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