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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택(독립 큐레이터)
 
 
한국 미술계에서의 아트 페어 형성
 
한국의 미술계를 이루는 다양한 벡터들 가운데, 그 주요한 기준 축으로서 오랫동안 자리매김해 온 규정의 준거는 이른바‘상업 미술’과‘순수 미술’이라는 구분선일 것이다. 물론 이 단어의 의미를 말 그대로 따져볼 때 그것이 미술계에서 범주화하는 작업의 모든 구성체들을 적합하게 지칭하고 있다고 단정 짓기는 불가능하겠지만, 보통은‘상업계’와‘순수계’, 즉 특정한 작업의 가치나 의미가 이 두 분야 중 어느 지점을 좀 더 지향하고 있는지에 따라 작가의 작업은 구별 지어져 위치한다. 

당연히 이 구분은 매우 느슨하고, 서로 뒤섞일 수 있기도 하며, 양측을 끊임없이 옮겨 다니거나, 동시에 속하는 것도 허락한다. (다만 순수 계열의 작가를 비상업 작가군으로 명명하기는 하나, 상업 작가군을 비순수 작가로 명명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미묘한 경계를 두고 상업 미술과 순수 미술은 대치 아닌 대치를 지속해 왔으며, 그 현현의 역사는 분명 서로 구별된다. 그리고 이를 구분하는 가장 가시적인 증명은 바로 작품을 소장하기는 하지만 직접 매입하거나 판매하지 않는 여러 공기관이나 재단에서 행해지는‘전시’와 작품을 판매하는 데 목적을 두는 예술 행사인‘페어’(fair) 사이의 이질적 특징 사이에서 일어났다. 

상대적으로 그 형식과 개념을 확고히 해 온 순수(한) 미술 전시의 경우, 어느 정도 이를 이해하는 이론과 현장에서의 인식틀을 구축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상업적인 아트 페어의 경우에는 한국 현대 미술의 맥락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다방면으로 찾아 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을텐 데, 그 이유는 최근 작품의 판매 실적과 전시적 가치를 함께 포괄하고자 하는 식의 달라진 페어 경향에 기인한다.  
 
아트 페어와 관련하여 한국의 상황을 살펴보자면, 그 기원은 1979년 “화랑미술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아트 페어인 독일 쾰른의“Kölner Kunstmarkt”(이후“Art Cologne”로 개명)가 1967년에 개최되었음을 참작하면, 한국의 아트 페어 역시 그에 못지않게 지금은 꽤 긴 역사를 자랑한다. 더불어 그 양의 측면에서도 페어는 성장해 왔는데, 현재 한국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의 수는 총 47개(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자료 참조)에 달한다. 

하지만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아트 페어의 추세에 반해 실제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페어 사례의 비율이 현저히 낮은 것도 사실인데, 이와 같은 지표는 페어의 조직(organization)이 긍정적인 성취를 위해 필수적으로 수반해야 할 기획의 다단성을 반증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 아트 페어는 작품을 사고파는 행위가 실현되는 장소로서의 역할을 기본적으로 수행하면서, 동시에 이것이 하나의 기획된 예술 이벤트-형식으로서의 임무 또한 부여받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고려할 때, 각각의 아트 페어에 대한 평가는 한층 더 다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실제 그러한 평가가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아트 페어는 통상적으로 작품을 진열하고, 보는 것과 같이, 전시와 동일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면서, 아울러 각각의 부스에서 전시된 작품에 꼬리표를 달아 가격을 표시한다. 그러나 특기할 만한 것은 그 시장성의 척도가 계속적으로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시장성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기준들이 요동치며 일으키는 분화의 양태는 아트 페어가 ‘무엇을 팔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부터, 그것을‘어떻게 팔 것인지’, 그리고 ‘왜 그것을 팔(혹은 살) 것인지’에 대한 기조를 연쇄적으로 활성화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아트 페어의 전개 과정 속에서 나타난 목적 초점의 전이는 미술 시장의 작동 논리를 기초로 미술사의 맥락 및 동시대 미술의 풍경의 형성에 관여하며, 작업의 의미나 작품의 가치에 대한 판단 잣대를 형성하는데 일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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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KIAF ART SEOUL_2018



왜?! 왜!?
 
지금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상업 미술과 순수 미술의 간의 경계가 뚜렷했던 이전에는 소위 ‘상업 작가’와 ‘비상업 작가’의 구분이 좀 더 명확하게 존재했는데, 그 나눔은 작가들이 어떤 갤러리에 소속되어 있느냐 혹은 어느 기관에서 주로 전시를 하는가와 같은 개인 이력에 따른 것이었다. 나는 여기서 국제갤러리나 PKM갤러리, 그리고 아라리오 갤러리나 가나아트센터 등의 몇몇 대형 갤러리의 예외적인 운영 방식을 제외하고는, 그 외 대부분의 갤러리가 상업성이나 취향과 같은 파편적 기준을 가지고 작가 개인과 그들의 작업 활동, 그리고 작품의 생산, 보관, 유통을 지원하는 전통적인 화랑의 운영 방식을 고수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순수성과 생산성의 추구’라는 예술 현황에 대한 기여도를 가지고 미술계에 대한 아트 페어의 영향력을 가늠할 때, 위에 언급한 갤러리들 가운데 전자가 대규모의 자본과 이를 바탕으로 구축해 온 한국 현대 미술계에서의 영향력으로 순수성과 생산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포획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반면, 후자의 경우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그 중 한쪽의 항에만 자신을 체결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과거 작가와 작품은 이분법적으로 정의해지며, 크게는‘기관급 작가군’과‘페어형 작가군’으로 분류되었다. 

뒤집어 말하면, 이는 양측을 모두 만족시키는 작가, 즉 미술사의 형성에 관여하거나 소속 작가를 국제무대에 진입시킬 수 있을 정도의 명성을 가진 갤러리에 소속된 일부 작가 이외의 작가들은 (갤러리의 구분과 마찬가지로) 두 분야 가운데 어디에 자신을 귀속시킬 것인가를 선택해야 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미술관에서 대규모의 전시를 열면서 스스로를 비상업 작가로 규정하는 동시에, 일련의 아트 페어에서 빼어난 성과를 거두는 작가들의 비율이 아트 페어에 참여하는 작가 전체의 수와 비교해 매우 낮을 수밖에 없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렇듯 이전에는 순수 (매체) 미술과 상업 미술의 범주 사이에서, 작가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작업을 자가 규정하기 위해 자기 고민 속을 유영해야만 했다. 작가는 작업을 지속하기 위하여 불가분하게 작품을 판매해야 하지만, 만일 그 스스로가 본인의 작업을 그 대립 범주 속에 귀속시키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혹은 만일 상업 미술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이미지를 가진 작가의 작업은 상업 미술계에서 전혀 거래되지 않는가? 비상업 미술을 지향하면서도, 스스로의 비상업적 작업 이미지를 해치지 않은 채로 계속적인 작품 생산을 위해 작품을 거래할 방안은 무엇이며, 또 현실적으로 이러한 장은 누구에 의해 구현되어야 할까? 

결국 순수와 상업이라는, 그 명칭에서부터 이미 모순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던 이 단절은 아마도 붕괴의 가능성을 이미 내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구분이 모두에게 공평한 규칙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문제의 씨앗을 예술이라는 토양 위에 파종하고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법적으로 작품을 매입하거나 매매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공기관 혹은 문화 재단의 경우(물론 이들 공기관 및 문화 재단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의 경우에도 소장 또는 기부라는 형식을 통해 각각의 컬렉션을 소유한다.)를 제외하고는, 사실 갤러리를 포함하는 나머지 예술 기관은 작품을 전시할 수도 있고, 전시한 작품을 판매할 수도 있다. 

이처럼 재편된 인식에 따라 기존과는 차별화된 다양한 기관의 형태가 등장했으며, 이들이 일으키는 또 다른 아트 페어의 생성이 개시되었다. 그리하여 아트 페어는 더는 관습적인 화랑의 운영 방식을 따르는 조직으로만 구성된 복합체일 필요를 상실했다. 이로 인해, 페어의 본질적인 목적, 즉 작품의 판매 실적을 크게 충족시켜주는 컬렉터에게 집중되었던 아트 페어의 기획은 그 대상의 주요 범위를 실구매 계층으로부터, 전시나 행사의 일반 관람객, 또는 페어의 참여자들과 동일한 위치에 있는 다른 작가들이나 평론가 및 기획자 등으로까지 확장하면서 조직의 노선을 다변화하고 있다. 이제 기획자, 작가, 그리고 컬렉터 혹은 관람객은 적극적인 관계자로서, 각자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아트 페어를 조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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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아시아호텔아트페어_2018



 
동시대 한국 아트 페어의 몇 가지 유형
 
동시대 한국의 아트 페어는 규모와 형식 및 그 기획의 결에 따라 몇 가지의 궤로 분화되어 점차 제도화되고 있다. 아트 페어는 시장 경제의 패러다임 아래 작품의 거래를 전제하며, 판매와 구매 행위 증진을 통한 이익 창출 및 작품 제작의 생산성 향상에 여전히 추구하면서도, 아트 페어 각각이 방점을 둔 개별적인 정체성 확립의 관념에 따라 서로 다른 형식을 구축하면서 한국 미술 시장의 지형도를 그려낸다. 그리고 여기에는 주최 혹은 주관 기관, 참여 구성체 혹은 구성원, 그리고 이를 후원하는 단체 간의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이러한 이해관계는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다각도에서 규정하고, 미술사적인 의미 맥락 형성에도 직간접적으로 개입한다.     
 
-  중심부의 아트 페어
 
한국 아트 페어계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주류의 아트 페어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업의 의미를 자유 시장 경제 논리와 결부시키는 동시에, 실제 예술 주체들의 생산성을 화폐 가치로 환산하고 이를 다시 한국 미술 (시장)의 가치로 귀결시키고자 하는 광범위한 목적을 공유한다. 이와 같은 아트 페어로는“The Korea International Art Fair”(KIAF, 이하 키아프)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며, 그 외에도 “서울국제아트페어”(MANIF), “아트부산”,“광주국제아트페어”(아트광주),“강원아트페어”,“경남아트페어”등과 같이‘(시, 군, 자치구 명) + 아트 페어’ 식의 여러 행정 구역의 명칭을 수반하는 지역 기반의 아트 페어가 있다. 

또한“아시아호텔아트페어”(AHAF, 이하 아시아호텔아트페어)와 같이 페어가 열리는 장소 특정적 성격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이 가운데 “Korea”,“Asia”와 같은 단어를 앞세운 키아프나 아시아 호텔아트페어 같은 경우 그 이름에서부터 페어의 지향점을 확연히 부각한다. 올해로 17회를 맞는 키아프에는 국내외의 갤러리 174개가 참여하는 명실상부 한국의 대표적인 국제 아트 페어이다. 2008년에 출범한 아시아호텔아트페어 역시 서울과 홍콩을 오가며, 아시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호텔 아트페어로서 그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이 아트 페어들의 보도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들 페어는“한국, 나아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아트 페어를 개최한다.”는 사실을 그들의 홍보 수단으로 앞세운다. 지역 기반 아트 페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그 규모를 강조하는 것에는 여념이 없어 보인다. 이와 같이 최대 규모의 아트 페어를 지향하고, 이를 실제 실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주최 측의 자생석인 노력에 더해 여러 기관과 단체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 대부분의 아트 페어는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의 국가 기관 또는 국가 산하 기관들과 각 지방 자치 단체의 후원으로 행해지며, 여기에 추가로 여러 기업들의 후원이 뒤따른다. 이러한 대규모 자본의 투입은 곧 대규모, 혹은 최대 규모의 아트 페어를 개최 가능하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홍보에 있어서도 엄청난 자본을 투입할 수 있게 함으로써 수많은 단체의 참여를 끌어내었으며, 관람객의 방문 유도에도 큰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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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대형 아트 페어의 유치는 분명 명망 있는 갤러리나 작가, 기획자의 행사 참여를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는 다시 그 아트 페어의 명성을 상승시키는 결과로 환원된다. 이로써, 국내 주류 아트 페어는 자본의 투자가 곧 예술의 가치를 드높이는 일과 직결되는 자본주의적 공식의 정당성을 확인토록 해 준다. 그러나 이는 예술의 가치나 아트 페어의 질에 대한 판단 근거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논지를 창출할 수 있다. 여기서 전자, 즉 예술의 가치와 자본주의적 논리의 야합에 대한 미적 논쟁은 차치하고서라도, 후자의 아트 페어의 질에 대한 문제를 논할 필요는 충분해 보인다. 

그 이유는 특정한 초대형 아트 페어의 평판이 그 자체로 제도화됨에 따라 미술 시장의 양극화는 점차 가속화될 것이며, 이는 미술의 대중적 확장과 그 시장의 유연화라는 아트 페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에 점차 어려운 상황을 저 스스로 초래하는 형국을 자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러한 현상은 곧 지금의 미술계가 순수계와 상업계로 구분되던 과거의 역사로 복귀하도록 기능할 수도 있으며, 겨우 그 진화점을 찾아 차치해 둘 수 있었던 예술의 가치 판단 문제에 대하여 다시 불을 놓게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양과 질을 자본으로 일치시키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양을 확충한 상태로 어떻게 아트 페어의 질을 높여갈 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잠시 안도할 수 있는 것은, 이 대형 아트 페어가 어느 정도 매몰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보완을 위한 자기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인데, 이들은 이른바‘특별전’의 전시 형식을 내부에 삽입시킴으로써 그 폐쇄성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듯하다. 

대게 대규모의 아트 페어는 보통 당대의 상품성 있는 작품을 출품하는 갤러리의 작업 선정의 경향 전반을 느슨하게 아우르려 함으로, 기획의 특정한 선형을 파악하기 어렵거나, 그 기획의 선형이 존재한다고 해도 매우 흐릿하다. 하지만 이 특별전의 형식은 최소한으로 발현되는 큐레토리얼 발췌의 기준에 따라 작품을 재선정하는 과정을 포함시키기 때문에, 이를 포용하는 아트 페어는 미술 시장의 논리를 비껴낼 수도, 끌어안을 수도 있다. 

특히 2018년의 키아프 같은 경우, 상업과 비상업을 관통하는 DSL 컬렉션의 설립자들을 조직위원으로 위촉하거나, 같은 해 열린 광주비엔날레와의 협업을 통한 특별전을 선보이고, 국내외 미술관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컬렉션에 대한 학술적 콘퍼런스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등 자기 확장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반영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력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위해서는 좀 더 그 경과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나, 그들이 어떤 변혁의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 변화의 계기는 상업성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 담론 형성의 장으로서의 새로운 아트 페어의 의미를 확보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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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_유니온아트페어_2018


-  주변부의 아트 페어
 
미술계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주류의 시스템이 일정 부분 변화를 꾀하며 지향의 좌표를 수정하고 있는 한편,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라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그로부터 탈주하거나, 그를 부정하거나, 그에 저항하면서 중심과 주류의 주변부에 새로운 자리를 찾고자 하는 아트 페어의 경향이 동시대에는 두드러진다. 전시의 내용과 페어의 형식을 뒤섞으며 시스템을 재건축했던“굿-즈”(세종문화회관, 2015), 올해로 3회째를 맞는“유니온 아트 페어”, 2015년 서울시립미술관의 예술가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SeMA 예술가 길드” 등의 행사가 그 대표적인 대안적 아트 페어의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팔 수 없었거나 잘 팔리지 않았던 매체 예술의 유통을 꾀했던“언리미티드 에디션”(UE)이나 “퍼폼 플레이스” 그리고 “더 스크랩” 또한 페어의 형식을 빌린 대안적 흐름의 일환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을 넓게는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한국에서 활발하게 작동하던 한국 ‘대안 공간’의 역사를 이어내는‘작가 주도형’ 아트 페어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지만, 이 일련의 행사들에 대해서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신생 공간’의 범람이라는 현상과 관련지어 조망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당시에도 쌈지 스페이스나 대안공간 루프 등과 같이 내부에 큐레이터를 두고 기획전 (또는 연속된 개인전)을 이어나가는 대안 공간이 존재했지만, 90년대 대안 공간의 등장과 함께 유행을 선도했던 하나의 담론은 기존의 화랑 주도의 구조를 벗어나고자 했던 작가 주도 공간의 표방이었다. 

2000년대 중반의 신생 공간들은 이 아티스트-런 스페이스(artist-run space)의 개념을 수용한 채, 좀 더 적극적인 태도로 기획자들을 공간의 운영에 포함시키면서, 그 규모를 막론하고 기획의 결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전시 제작에 집중한다. 이 두 모델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미술이 기획 또는 큐레이팅이라고 명명하는 개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기존의 작가 주도형 예술 공간이 주류의 큐레이터나 갤러리스트들이 주도하는 미술계의 구조를 재편하기 위해 기획의 틀에 대한 독점적 소유권을 해체했다고 한다면, 최근에 나타난 신생 공간의 개념은 기획의 고유 권한을 인정하면서 큐레이터를 기획 및 운영에 참여하는 작가의 지위와 병치시키거나, 큐레이팅의 개념에 대해 이전 세대와는 구별되는 세대적 인식을 점유하는 기획자가 직접 공간을 대변하는 방식의 구조틀을 공유한다. 
 
위와 같은 성격을 띤 신생 공간이나 신생 갤러리들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대안적 아트 페어는, 그 태동에서부터 이미 주류 아트 페어와 스스로를 구분 지으려는 의도의 토대 위에서 예술 생산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영리적 활동을 자기 조직적으로 개진한다. 이때의 기획 운영 조직체는 그 형성에 있어 개별적인 예술 주체가 그 역할을 복수적으로 수행하는 형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복수의 개별 예술 주체들의 집합체로서 구성된다. 이렇게 변화된 조직체의 구조는 자체적으로 기획성을 내재하는 인력의 확충을 통해 한층 전문화하고,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예술 실천의 원동력을 추동함으로써 내부적으로 교류의 폭을 넓혀내었다. (굿-즈의 경우, www.goods2015.com 참조) 

그런가 하면 표면적으로는 기존의 전통적인 아트 페어의 구조를 따르면서도, 특정 세대를 구분 짓고 그들의 작업을 동시대 아트 페어의 콘텐츠로서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새로이 설정하기도 한다. 그 참여의 조건은 작가의 커리어나, 작품의 가격 및 거래의 방법을 재조정하는 등의 방법을 포괄한다. (유니온 아트 페어의 경우) 이에 더하여, 이전의 아트 페어 범주에서 자주 소외되었던 사진이나, 퍼포먼스 혹은 디자인 상품 등과 같은 매체 특정성(차례로 더 스크랩, 퍼폼 플레이스 그리고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경우)에 집중하여 그 행사성을 극대화하면서 컬렉터의 니즈를 충족하는, 분화된 아트 페어의 기획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작가-수집가 사이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형성함으로써 양극화에 기인한 미술 시장의 유통 정체를 해소하고자 했는데, 이와 같은 아트 페어의 전개는 국가나 지방 행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2015년부터 시작한 지원 사업인‘작가 미술장터’나 서울문화재단의‘청년예술지원사업’등의 기금이 조성된 후, 이를 활용하기 시작하며 비로소 플랫폼 차원에서의 아트 페어에 대한 실험적 이해와 실질적인 움직임이 행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작금의 신생 아트 페어는 이에 화답하는 관람객들의 반응을 통해 그 등장의 필요성을 충분히 입증한 듯하다. 이는 예술이 그 생산자 및 향유자들의 정체성을 반영해야만 하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 맺음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적 기준을 살펴야 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미술의 향유 형태를 그들 모두가 진정으로 고민해야만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확인하는 계기를 다시금 맞이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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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_SOLO SHOW_2018


경계 없는 경계
 

이처럼 오늘날은 과거와 현재, 전통과 새로움과 같이 상충하는 미적 가치가 동시에 혼재하는 상황이다. 그 중 나는 변형에 변형을 거듭한 결과처럼 보이는 하나의 혼종적인 아트 페어를 목격할 수 있었는데,“SOLO SHOW”(해담하우스, 2018)라는 이름의 아트 페어가 바로 그것이다. 여준수(갤러리 조선), 정재호(갤러리2) 그리고 김인선(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등 3인의 미술기관 대표 및 디렉터로 구성된“협동작전”(COOP)의 기획으로 개최된 이 아트 페어에는 가나아트갤러리, 갤러리 조선, 갤러리 플래닛, 갤러리ERD, 갤러리2,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아마도예술공간, 아트사이드 갤러리, 원룸, 합정지구, 의외의 조합, 조현화랑, 학고재, Whistle, MK2갤러리, P21 등 총16개의 기관이 참여하며, 아트 페어의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각각의 참여 기관은 모두 한 명의 작가만을 대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아트 페어를 구성하는 개별 단체들 사이의 성격으로, 이전의 기준에 따른다면 이들은 상반되거나 각자 완전히 다른 범주로 규정되어야 했던 지위를 점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아트 페어를 위해 기여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만약 SOLO SHOW를 동시대의 예술에 대한 인식을 읽어낼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이자, 앞으로 도래할 어떤 예술 경향의 징후라고 본다면, 예술에서 경계라는 개념은 더는 유효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다. 

이제 (예술이)‘-이어야 하는 것’혹은‘-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는 명제는 (예술은)‘-이기도 하고, -이기도 한 것’또는‘-일 필요가 없거나, -이어도 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와 같은 세계에서 현현하는 아트 페어 또한 마찬가지의 명제를 참인 것으로 규정할 것임은 자명하다. 모두가 원초적인 생존을 목표로 전 방향으로의 질주를 시작한 바로 그 순간, 대립과 구분을 위한 경계는 어쩌면 한참 전에 철거했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술계에서 이 경계는 완전히 붕괴하여버린 것일까.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안타깝게도, 이 경계의 설정의 행위는 무너질 수 없는 인간의 본능과 맞닿아 있으며, 다른 무엇 혹은 새로운 무엇을 발굴해 온 예술의 역사와도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당장에 경계는 배제나 제거되어야 할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테지만, 예술 창작 행위의 이면에는‘다름’이라는 개념으로 그 경계를 구분 짓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동시대에 나타나는 무경계의 경향은 항상 이행하고 전이하려는 미적 행위의 본질적 성향과 그 향유 방식의 변화라는 과정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확장성의 논리 하에‘일관성’이라는 항은‘다양성’의 항으로 변모하였으며,‘단일성’이라는 항은‘복수성’이라는 항으로 확대되었다. 아트 페어의 형식, 특히 그 이행의 과정을 뚜렷하게 거쳐 온 한국 아트 페어의 조직적 특성은 이처럼 혼재와 공존의 양태를 빌려 예술에서의 생산성과 그 순수한 미적 의미를 한 데 집적한 혼합체 덩어리 그 자체이다. 

나는 한국의 아트 페어와 그 조직의 이행 양상을 바라보며 예술이라는 거대한 대륙을 관통하는 횡단 열차를 떠올린다. 수많은 대륙 횡단 열차의 노선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를 이 아트 페어는 오늘도 경계 없는 경계를 쉴새없이 통과하고 있다. 단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열차가 제 목적지에 다다르는 중에 반드시 멈추고 지나쳐야 하는 몇몇 경유지들을 잊지 말고 상기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이동의 방법에 정해진 해답은 없다. 그저 지나온 그곳과 나아갈 그곳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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